2024-06-28 09:10:12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50] 조경: 영남문화의 발상지

(사진설명: 아름다운 조경)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쉰 번째는 영남(嶺南) 문화의 발상지 조경(肇慶)이다. 유구한 역사가 풍부한 문화적 함의와 수려한 경치를 보유한 조경은 방대한 량의 백과전서를 방불케 한다.

조경에서는 물결치며 흐르는 강물 한 줄기와 서로 푸름을 다투는 호수 두 개, 각자 험준함을 자랑하는 협곡 세 개, 하늘 높이 솟은 탑 네 개, 예스러움을 다투는 고건물 다섯 개, 그리고 여섯 둔덕, 일곱 바위, 여덟 동굴이 조화의 하모니를 이룬다.

광동(廣東)의 중서부에 위치한 조경의 북쪽으로는 주강(珠江)의 지천인 서강(西江)이 흘러 지나고 북회귀선도 조경을 관통한다. 북쪽으로 산발에 기대고 남쪽으로 강물을 마주하며 남해를 바라보는 조경은 예로부터 영남의 요충지로 ‘서강(西江)의 보석’이라 불렸다.

(사진설명: 아늑한 여초루)

영남의 유명한 도시인 조경은 21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589년 수(隨) 왕조는 이 곳에 단주(端州)를 두고 고요(高要)와 단계(端溪) 등 아홉 현을 관리하다가 607년에 단주를 신안군(信安郡)으로 고쳤다.

618년 당(唐) 왕조가 단주를 회복했다가 742년에 고요군(高要郡)으로 개칭했으며 758년에 다시 단주를 회복했다. 그러다가 1101년 북송(北宋) 때 단왕(端王)으로 있던 조길(趙佶)이 보위에 오른 후 자신이 살던 단주에 흥경군절도(興慶軍節度)를 두었다.

1118년 송휘종(宋徽宗) 조길은 또 어필로 ‘조경부(肇慶府)’를 써서 단주에 하사했으며 그로부터 단주는 ‘경사가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로 조경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덕경학궁)

유구한 역사로 인해 조경에는 인문경관이 풍부하고 고적이 많다. 대표적인 인문경관으로는 매암(梅庵)과 옛 성벽, 칠성암(七星岩), 열성용모조묘(悅城龍母祖廟), 덕경학궁(德慶學宮) 등을 꼽을 수 있다.

조경에는 또 불교 선종(禪宗)의 육조(六祖) 혜능(慧能)과 당(唐) 나라 때의 서예가 이옹(李邕), 북송(北宋)의 청렴한 관리 포증(包拯), 명(明) 나라 문학가 탕현조(湯顯祖),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 혁명의 선구자 손문(孫文), 북벌 명장 엽정(葉挺)을 비롯한 내외 명인들이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다.

조경에는 둘레가 2,800m에 달하는 옛 성벽이 보존되어 있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조경의 성벽은 원래 토성이었는데 1113년에 성곽을 증축하고 벽돌로 성벽을 다시 쌓았다.

(사진설명: 피운루와 옛 성벽)

조경의 이 성벽은 역대로 수차 보수를 거쳤지만 성벽과 성문의 위치는 변경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1987년부터 1996년 사이에 조경시는 북쪽의 성벽을 보수하고 조천문(朝天門)과 돈대(墩臺), 피운루(披雲樓) 등을 복원했다.

3층 높이의 피운루는 건물의 상단에 늘 구름이 끼어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며 운무 속의 피운루는 조경고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관이다. 조경고성 중앙의 관아 유적지 입구에는 송(宋) 나라 건물양식의 여초루(麗譙樓)가 솟아 웅장함과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송휘종이 보위에 오른 후 쓴 ‘조경부’를 봉안하기 위해 이 건물을 지었고 당시에는 어서루(御書樓)라 불렀다. 1462년 명(明) 나라 군수(郡守) 황유(黃瑜)가 어서루를 개축하고 여초루라 명칭을 고쳤다. 여초루 뒤의 관아는 고대에 단주를 관리하던 곳인데 송나라 때 청렴한 관리인 포증이 이 곳에서 3년간 일하면서 뛰어난 실적을 쌓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칠성암)

산 좋고 물 맑은 아름다운 칠성암은 호수 기슭에 7개의 아름다운 바위산이 솟아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이곳에는 또 선녀호(仙女湖)와 중심호(中心湖), 파해호(波海湖), 청련호(靑蓮湖), 이호(里湖) 등 다양한 모양의 호수가 서로 이어져 비경을 자랑한다.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이 하나를 이루어 산과 호수, 누각과 정자가 조화로운 칠성암은 기이하고 수려한 산수의 분재를 방불케 하며 ‘영남 제일의 기이한 경관’이라 불린다.

많은 문화유적과 아름다운 산수로 인해 역대로 많은 문인묵객들이 이 곳을 찾아 칠성암을 노래하는 작품을 많이 창작했다. 그런 작품들은 칠성암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석각으로 남아 조경의 일경이 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정호산)

광동 4대 명산 중 으뜸을 자랑하는 정호산(鼎湖山)은 산정에 일년 사시절 물이 마르지 않는 호수가 있다고 해서 이름이 정호산이다. 정호산에는 녹음이 울창하고 고목이 하늘을 찌르며 바위에서는 폭포가 날아 내리고 그 사이로 옛 사원이 산재해 조화롭다.

정호산은 북회귀선 북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북회귀선에 박힌 보석’이라 불린다. 이 밖에도 조경에는 열강루(悅江樓)와 조경(肇慶) 사탑(四塔), 조경학궁, 열성용모조묘를 비롯한 많은 볼거리가 있다.

영남 토착문화의 발상지이자 중원(中原) 문화와 영남문화, 서구문명과 중국 전통문명이 가장 일찍 융합되기 시작한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한 조경은 서강(西江) 유역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사진설명: 웅장한 매암 대웅전)

중원문화, 영남문화, 서구문명이 어우러진 조경에는 지금도 많은 명승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조경시 서쪽의 둔덕에 위치한 매암(梅庵)은 북송(北宋) 때인 996년에 신축한 절이다.

매암은 불교 선종의 육조 혜능이 이 곳에 매화나무 가지를 꽂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독특한 풍격의 절로 특히 대웅전이 송나라 목조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보존해 높은 역사 및 문화재의 가치를 가진다.

매암은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종교문화를 보여주고 영남의 대표적인 천년 목조 건물인 매암의 대웅전은 ‘천 년의 옛 절, 국가의 눈부신 보물’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조경)

1583년 ‘동서문화 소통의 제1인’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자명종(自鳴鐘)과 해시계, 세계지도 등 유럽의 르네상스 성과물을 가지고 조경에 이르렀다.

조경에 이른 마테오 리치는 1585년 중국 최초의 성당인 선화사(仙花寺)를 짓고 세계 최초의 중국어 세계지도인 <산해여지전도(山海與地全圖)>를 제작해 동서양 문명의 교류에 기여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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