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10:29:03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53] 카스: 중앙 아시아의 고도

(사진설명: 아름다운 카스)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쉰 세 번째는 중앙 아시아 왕조의 옛 도읍 카스(喀什)이다. 중국의 서쪽, 파미르 고원의 기슭에 20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카스가 있다.

세월의 풍상고초 속에서 니야성(尼雅城)과 누란성(樓蘭城)이 사라지고 물길이 방향을 바꾸고 호수도 말랐지만 놀랍게도 사막 변두리의 도시 카스는 여전히 완전하게 보존되어 오늘날도 독특한 서역의 풍광으로 세상에 명성을 날린다.

동쪽으로 타클라마칸 사막과 이웃하고 서쪽으로 파미르 고원을 가까이 하며 남쪽으로 카라곤륜산발에 의지하고 북쪽으로 천산(天山) 산맥을 바라보는 카스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위치하며 ‘장터의 왕국’, ‘과일의 고장’, ‘노래와 무용의 고장’이라 불린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카스)

기원전 2세기에 카스는 서역(西域) 36개 국 중 하나인 소륵국(蔬勒國)의 도읍이었으며 기원전 60년 한(漢) 나라가 서역에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두면서 카스는 서한(西漢)의 치하에 있었다.

동한(東漢) 때인 73년, 대장군 두고(竇固)가 흉노를 정벌하면서 반초(班超)가 소륵국을 평정했다. 그 후 반초는 30년간 소륵을 관리하면서 오늘날의 카스시 동남쪽에 소륵성을 쌓았다.

627년, 당(唐) 왕조가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설립하면서 소륵은 그 치하의 ‘안서 네 개 진(鎭)’ 중 하나가 되었다. 840년부터 1211년 사이 돌궐족들이 카스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돈황(敦煌)에 이르고 서쪽으로 오늘날의 중앙 아시아 사르다리아 강에 이르며 북쪽으로 발하슈 호와 이웃하고 남쪽으로 곤륜산(崑崙山)관 인접한 카라칸 왕조를 세우고 카스를 동쪽의 도읍으로 정했다.

(사진설명: 카스 옛 성 유적)

그로부터 천 년이 넘게 흘렀지만 오늘날도 카스에는 한나라 때 소륵국 옛 성의 흔적을 보존한 고성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동서 길이가 10km에 달하고 남북 너비가 6km인 이 고성은 성곽과 보루, 건물, 작업실, 종교 활동 장소 등 다양한 유적을 보존한다.

성곽의 높이는 5.6m, 두께는 7m에 달하며 동남쪽과 서북쪽에 성문 하나씩 냈다. 유적지에서는 많은 도기와 구리, 쇠, 유리, 옥기, 보석이 출토되었다. 이 곳에는 또한 신석기 시대의 고문화 유적도 보존되어 있다.

17세기 중반에 아팍 호자가 카스를 중심으로 신강의 남부 지역을 아우르는 정교합일의 호자지방정권을 설립했다.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하는 호자정권은 천산이남지역을 200년 동안 지배했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래녕성 유적)

1760년, 청(淸) 왕조는 카스에 참찬대신(參贊大臣)을 두어 천산 남쪽 8개 도시의 군사와 정치업무를 관장했다. 카스의 서쪽에 위치한 래녕성(徠寧城) 유적이 바로 1762년에 신축한 참찬대신의 관아이다.

성의 둘레가 1km에 달하고 높이가 4m이며 성문 4개를 둔 이 성에는 창고와 관아, 병영, 군사 훈련장, 점장대, 관제묘(關帝廟), 만수궁(萬壽宮)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청 나라 때에 이르러 건륭제(乾隆帝)가 ‘래녕성’이라는 명칭을 하사하고 그 후 성의 남쪽에 많은 상가 건물을 지었다. 그러면서 내륙 지역에서 이주한 많은 만(滿)족과 한(漢) 족 상인들이 이 곳에서 가게를 경영하며 카스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카스고성)

유구한 역사의 변경 도시 카스는 고대에 벌써 동서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북쪽 코스와 남쪽 코스, 가운데 코스가 한 곳에 집중된 동서양 교통의 요충지이자 허브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경유해 서쪽으로 온 상대(商隊)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온 사람들이 모두 이 곳에서 쉬어가면서 많은 화물이 이 곳에 집중되었다가 다시 각지로 수송되었으며 이로 인해 카스는 ‘장터의 왕국’이라 불린다.

카스 동북쪽에 위치한 대바자(大巴扎)는 동문(東門)시장이라고도 부르는 카스 최대의 종합시장이다. 민족 특색이 다분한 이 시장은 ‘중앙 아시아 제일의 바자’, ‘중앙 아시아 물자 박람회’라 불린다.

(사진설명: 카스 시장의 일각)

1979년에 신축한 시장 정문은 위구르족의 건축양식을 띠고 있으며 정원의 형식으로 된 시장에는 가축과 식량, 채소, 견과, 백화, 피혁, 신발, 식품 등 온갖 상품이 모여 있다.

특히 일요일이 되면 이 곳에는 상품을 실은 차량이 오가고 사람들이 붐벼 흥성거리는 시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온갖 상품을 구경하며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카스에서는 역사적으로 많은 시인과 학자, 사상가들이 났다. 9세기 초 불교계의 거두인 혜림(慧琳) 스님이 25년에 걸쳐 한문으로 쓴 100권의 <일절경음의(一切經音義)>는 불교의 음의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진설명: 유세프 카스 하지브의 무덤)

많은 지리와 물산, 풍물, 민속, 역사자료를 아우르는 이 저서는 중국에서 거대한 영향을 일으킨 동시에 후에 조선과 일본, 동남아 지역에도 전파되어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11세기에 출생한 카라칸 왕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학자인 유세프 카스 하지브의 거작 <복락지혜(福樂智慧)>와 마흐무드 카슈가리가 편찬한 <돌궐어대사전(突厥語大辭典)>은 중앙 아시아에서 중요한 영향을 행사한다.

특히 풍부한 내용과 아름다운 언어, 철학적인 이치로 정치와 경제, 문학, 역사, 의학 다 방면을 아우르는 <복락지혜>는 후세의 문학창작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까지 카스의 남쪽 교외에 <복락지혜>의 저자 유세프 카스 하지브의 무덤이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막이 불탑)

카스는 중국의 이슬람교 발상지 중 하나이다. 따라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곳에는 많은 이슬람교 고건물과 불교 고건물, 고대 무덤 등이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명소로는 이드 카흐 모스크와 아팍 호자의 무덤, 유세프 카스 하지브의 무덤, 마흐무드 카슈가리의 무덤, 삼선동(三仙洞), 막이(莫爾)불탑, 구룡천(九龍泉) 등이다.

1640년에 조성된 아팍 호자의 무덤은 이슬람교 두령 아팍 호자와 그의 가문 5대에 걸친 72명이 묻힌 가족 묘지이다. 궁전 형식의 무덤은 정교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카스)

아팍 호자 무덤은 문루(門樓)와 소예배사(小禮拜寺), 대(大) 예배사, 교경당(敎經堂), 묘실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며 상단이 둥근 메인 묘실의 위에는 탑 모양의 누각이 세워져 있다.

탑의 상단에는 또 황금으로 도금한 조각달 모양의 신월(新月)이 세워져 눈부신 빛을 뿌리며 장엄함을 연출한다. 아팍 호자 무덤의 동북쪽에는 청(淸)나라 건륭(乾隆)제의 후궁인 향비(香妃)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카스시 중심에 위치한 이드 카흐 모스크는 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재까지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자 신강 이슬람교 활동중심지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웅장한 이드 카흐 모스크)

전반 사원은 사원 앞의 광장과 사루(寺樓), 정문(正門), 경당(經堂), 예배전(禮拜殿), 정원, 연못 등 건물 및 경관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원에 꽃나무를 심어 환경이 심히 아늑하다.

목조 구조의 본전은 높이가 17m에 달하는데 지붕에 푸른 기와를 얹어 장관을 연출한다. 호화로운 장식의 건물 내부에는 많은 종교적 내용의 그림이 보존되고 바닥에는 종교적 색채를 띤 카펫을 깔아 장엄함을 보여준다.

이슬람교의 큰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사원 앞의 광장에 모여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서로 다른 형식으로 자신의 열정을 과시하고 마음 속의 희열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카스)

카스의 문화는 짙은 민족적 색채를 가진다. 이 곳 사람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해 카스는 ‘노래와 무용의 고장’이라는 미명을 가진다.

일찍 당나라와 송나라 때 소륵의 음악과 무용은 당시의 도읍인 장안(長安)에서 명성을 떨쳤으며 신강의 대표적인 가무인 십이무캄(十二木卡姆)도 바로 고대 소륵음악에 구자음악을 융합시켜 형성한 것이다.

또 위구르 고전 무용인 사이남(賽乃姆) 무용은 우아하면서도 경쾌하고 날렵한 스텝으로 유명하다. 카스에서는 명절이 되면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사이남 무용을 비롯한 다양한 춤사위를 벌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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