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5 10:50:06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55] 은천: 西夏의 옛 도읍

(사진설명: 아름다운 은천)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쉰 다섯 번째는 서하(西夏)의 옛 도읍 은천(銀川)이다. 강남에 비견하는 아름다운 경치와 옛 왕국 도읍으로서의 문화, 회(回)족의 이슬람 풍속은 은천의 3대 경관이다. 은천은 하투(河套) 문화와 실크로드 문화가 어울리는 중국 서부지역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발전 잠재력이 가장 큰 관광도시 중 하나이다.

녕하 벌판의 중부에 위치한 녕하(寧夏) 성도 은천은 서쪽으로 하란산(賀蘭山)에 기대고 동쪽으로 황하(黃河)와 인접한다. 강우량은 많지 않지만 풍부한 지표수로 인해 ‘오아시스 효과’가 뚜렷한 은천은 황하 연안에서 가장 부요한 지역 중 하나이다.

은천은 예로부터 ‘봉황의 도시’라는 미명을 가진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 오색이 창연한 봉황 한 마리가 이 곳에 날아 왔다가 사막의 중앙에 있는 비취와도 같은 오아시스 은천벌판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아름다운 은천)

봉황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이 땅에 날아 내려 은천성으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이로부터 은천은 봉황의 도시라 불려 오늘날에 이른다.

사실 역사적으로 은천은 융적족(戎狄族)과 흉노의 유목장소였다. 기원전 24년 한(漢) 왕조가 은천의 동쪽에 북전농성(北典農城)을 축조했다. 일명 ‘여성(呂城)’이라 불리고 흉노는 ‘음한성(飮汗城)’이라 부른 이 성이 은천성의 시작이다.

677년 은천성이 황하의 홍수에 사라지자 그 이듬해 당(唐) 왕조는 오늘날 은천시의 동쪽에 회원성(懷遠城)을 축조했다. 이로써 은천시 도시 발전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사진설명: 은천의 고건물)

1005년, 당항족(黨項族)의 두령 이덕명(李德明)이 송(宋) 과 평화 합의를 체결하고 변경무역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번창일로를 달리고 당항족은 회원성에 도읍을 두기로 했으며 1020년 회원을 치흥주(置興州)로 개명하고 당시의 정치 중심지로 삼았다.

1038년, 당항족 두령 이원호(李元昊)가 흥경부(興慶府)에서 스스로 보위에 올라 국호를 대하(大夏)로 정하고 은천에 도읍을 두었다. 이로부터 흥경부는 변경의 소도시로부터 녕하와 섬서(陝西), 감숙(甘肅), 청해(靑海), 내몽골지역을 아우르는 서하국의 군사, 정치 중심지가 되었다.

서하국은 은천에서 10대에 걸쳐 존속했다. 1739년 강진으로 기존의 흥경부성과 청(淸)의 군대 및 청 왕실의 주둔지였던 만영(滿營)이 무너졌다. 후에 성을 복원하면서 성의 서쪽에 ‘신성만영(新城滿營)’을 축조했는데 그 위치가 바로 오늘날의 은천신성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서하왕릉)

서하왕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77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은천성 곳곳에는 서하 왕조의 많은 유적과 흔적이 남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눈부신 빛을 뿌린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바로 서하왕릉(西夏王陵)이다. 하란산 동쪽 기슭의 50㎢에 달하는 부지에 서하 태조의 유릉(裕陵)과 태종(太宗)의 가릉(嘉陵), 경종(景宗)의 태릉(泰陵), 의종(毅宗)의 강릉(康陵)을 망라한 9기의 왕릉이 질서 있게 줄지어 있고 200여 기의 왕실성원 및 공신의 무덤이 주변에 산재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서하왕릉이다.

황토로 둥글게 쌓은 무덤은 산처럼 높이 솟고 탑처럼 우뚝하다. 11세기에 축조된 이 왕릉은 동서 너비가 5km, 남북 길이가 10km에 달한다. 태릉을 중심으로 하는 왕릉에는 예술관과 박물관, 비림 등 명소도 조성되어 있다.

(사진설명: 서하왕릉의 일각)

푸른 하늘이 고요하게 펼쳐지고 산발에 감싸인 왕릉지역에 들어서면 시야가 탁 트여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서하왕조의 번창하던 어제를 보는 듯 착각하게 된다.

전한데 의하면 과거 몽골군대가 능을 덮었던 유리 기와를 전부 벗기고 지상의 건물을 모두 무너뜨리며 비석과 석상을 모두 부수어 지하에 묻는 바람에 오늘날까지 보존된 학대(鶴臺)와 각루(角樓), 신장(神墻)은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하지만 용을 조각한 돌 기둥과 연꽃을 새긴 기둥, 유리기와, 서하문으로 된 비석 등 출토 문물에서 서하왕국 당시의 정교한 기법과 높은 수준을 읽을 수 있다. 내외 학자들은 역사와 문화의 보고인 서하왕릉을 중국의 국보로 보며 ‘동양의 피라미드’라 부른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승천사탑)

불교를 숭상한 서하왕국은 많은 사원과 탑도 지었다. 은천시 서남쪽의 승천사(承天寺)에 위치한 승천사탑은 서하 때 유명한 불교의 승지였다. 특히 이 사원의 종소리가 유명해서 녕하 8경의 으뜸으로 선정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탁탑천왕(托塔天王)의 손에 들려 있는 탑이 바로 이 탑이라고 한다. 승천사탑 정상에 올라서면 은천시 전경이 한 눈에 안겨온다. 이 밖에 해보사탑(海寶寺塔)도 유명하다.

사원의 중심에 우뚝 솟은 해보탑은 녕하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건축물이다. 모난 벽돌탑인 해보탑은 높이가 5.9m에 달하는데 탑 정상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세차게 흘러가는 황하가 보이고 저 멀리로는 구불구불한 하란산이 펼쳐져 있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남관청진사)

현재 녕하는 회족 자치구이며 역사적으로 역대 지배자들은 이슬람을 신봉하면서 이슬람교를 다른 민족을 받아 들이고 다른 민족과 융합하는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따라서 오늘날도 녕하에는 크고 작은 규모와 다양한 형식을 자랑하는 이슬람 사원 3,500여개가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사원이 바로 남관청진대사(南關淸眞大寺)이다.

은천시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 남관청진대사는 원래 은천성 남쪽 성문 밖에 세워졌는데 1915년 성안으로 옮겨왔다. 1960년대에 무너졌다가 1981년에 다시 지은 사원은 현재 은천의 랜드마크이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남관 청진사)

무슬림이 숭상하는 청록색을 메인 색상으로 한 사원은 아랍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건물의 지붕 중앙에 녹색의 둥근 장식물이 조성되어 멀리서 바라보면 햇빛에 반짝거리는 청록색이 심히 장엄이다.

은천은 민족 풍토도 아주 독특하다. 이 곳의 명절로는 구얼방제(古爾邦節)이라고 하는 희생제와 러우쯔제(肉孜節)라고 하는 라마단, 성기절(聖紀節)이라고 하는 이슬람 창시인 마호메트의 탄신일이 가장 대표적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대 아랍의 선지(先知) 이부라힘의 꿈에 알라가 나타나 알라에 대한 경건함을 보여주기 위해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잠에서 깬 이부라힘이 막 아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려는데 알라가 파견한 특사가 양 한 마리를 끌고 와 대신 제물로 바쳤다. 그로부터 아랍인들은 해마다 알라에게 양을 제물로 바치는 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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