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0 09:27:24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58] 장액: 塞上의 江南

(사진설명: 아름다운 장액)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쉰 여덟 번째는 새상(塞上)의 강남(江南)이라 불리는 장액(張掖)이다. 하서(河西) 회랑에는 ‘금의 장액’, ‘은의 무위(武威)’라는 말이 있다.

무위와 마찬가지로 고대 실크로드 주변의 눈부신 보석인 장액은 수려한 산천과 풍부한 불교사원, 순박한 민풍으로 서부특색이 다분한 장액 고유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감숙(甘肅) 하서회랑의 중부에 위치한 장액은 고대 ‘실크로드’가 경유하는 중요한 도시이다. 남쪽으로 기련산(祁連山)을 마주하고 북쪽으로 합려산(合黎山)과 이웃한 장액은 물이 맑고 수초가 살찐 초원을 거느려 ‘금의 장액’이라 불리며 명성이 ‘은의 무위’를 앞선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장액)

기원전 111년 한무제(漢武帝)의 명령을 받고 출정한 곽거병(霍去病)이 흉노를 전승하고 실크로드의 원활함을 유지하기 위해 장액군(張掖郡)과 돈황군(敦煌郡)을 설립한 후 흉노를 꺾어 국토를 넓힌다는 의미의 ‘단흉노지비(斷匈奴之臂), 장중국지액(張中國之掖)’에서 글자를 따서 장액이라 이름했다.

역사적으로 ‘하서사군(河西四郡)’ 중 하나인 장액은 고대에 실크로드 주변의 유명한 도시였으며 ‘살찐 토지가 방목과 농경에 적합하다’는 미명을 가졌다.

수(隨)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오래도록 단절되었던 실크로드에 또 다시 상단이 오고 갔다. 수양제(隋煬帝)가 실크로드의 무역에 열중하면서 당시 장액은 서역과 외국의 상인들이 집중된 실크로드의 거래센터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장액고성의 고건물 종고루)

유구한 역사와 눈부신 문화를 보유한 장액에는 풍부한 역사유산이 남아 있다. 장액에는 수양제가 서쪽을 돌아보면서 장액에서 서역 27개국의 사절을 만난 스토리도 전해진다.

또 서역에 사자로 나간 장건(張騫)과 흉노를 정벌한 곽거병(霍去病), 서역통로를 개척한 반초(班超), 인도에 가서 불교경전을 가져 온 현장법사, 이리(伊犁)에 좌천된 임측서(林則徐) 등 명인들도 장액에 재미나는 스토리를 남겼다.

그밖에 근대 중국혁명사에서 서향전(徐向前)과 이선념(李先念)이 이끈 중국공농홍군(中國工農紅軍) 제4방면군은 장액에서 산천을 감동시킨 장엄한 전가를 울렸다.

(사진설명: 장엄한 대불사)

역사적으로 불교가 성행한 장액에는 사원이 많아서 ‘도시의 반이 산이고 나머지 반에는 탑이 숲을 이룬’ 국면을 형성했다. 오늘날까지 보존된 장액대불사(張掖大佛寺)와 숙남마제사(肅南馬蹄寺), 목탑사(木塔寺), 문수사(文殊寺), 민락원통탑(民樂圓通塔) 등이 장액의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대변한다.

장액고성의 서남쪽에 위치한, 내외에 명성이 높은 대불사는 서하(西夏) 때인 1098년에 신축된 장액의 대표적인 건물로 ‘새상(塞上)의 유명한 사찰, 불교 나라의 명승’이라 불린다.

대불사는 원래 높은 전각이 숲을 이루어 5천명이 동시에 예불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으나 세월 속에서 현재는 대불전(大佛殿)과 장경각(藏經閣), 취탑루(翠塔樓)만 남아 키 높은 고목 속에서 우아함과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웅장한 마제사)

숙남(肅南) 유고족(裕固族) 자치현에 위치한 마제사(馬蹄寺)는 천마(天馬)가 이 곳에 내려 말발굽 자국을 남겼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푸른 산과 맑은 물, 기이한 봉우리, 아늑한 동굴로 유명한 마제사는 석굴예술과 기련산(祁連山) 풍광, 유고족 풍토를 한 몸에 모은다.

300년대에 조성을 시작한 마제사 석굴은 승과사(勝果寺)와 보조광사(普照光寺), 천불동(千佛洞), 금탑사(金塔寺), 상중하(上中下) 3층으로 된 관음동(觀音洞)으로 구성되며 규모가 심히 웅장하다.

‘장액에 목탑사(木塔寺)가 있는데 하늘과의 거리가 여덟 아홉 자라네’라는 말이 있다. 장액 목탑사 목조탑의 높이가 아주 높음을 형상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진설명: 목탑사의 목탑)

목탑은 장액고성 서쪽의 만수사(萬壽寺)에 위치한다. 만수사는 실크로드 연안에서 유명한 사원으로 수(隨) 나라 때인 582년에 신축되었고 목탑은 당(唐) 나라 때인 639년 대장(大將) 위지경덕(尉遲敬德)이 어명에 의해 축조한 것이다.

최초에 15층 높이의 목조 탑 외관에 금박을 칠해 화려했으나 아쉽게도 청(淸)나라 후반에 큰 바람에 무너졌다. 현재의 목탑은 1926년에 지은 벽돌 구조에 누각 모양의 9층 탑으로 높이는 32.8m이다.

탑의 내부에 계단이 있어 탑 정상까지 등반이 가능하다. 날씨 좋은 여름날 탑에 올라 바라보면 저 멀리에는 기련산이 후련하게 펼쳐지고 가까운 곳에는 고성이 예스러운데 눈길이 닿는 곳마다 녹음이 울창해서 눈도 마음도 모두 시원해진다.

(사진설명: 장액의 아름다운 물)

‘하서의 제일 샘물’이라 불리는 감천(甘泉)은 장액고성 남쪽 성문 밖에 위치해 있다. 이 샘물은 물맛이 달아 감천이라 이름하며 장액이 옛적에 감주(甘州)라 불린 것도 이 샘물에서 기원했다.

감천에는 ‘유본여시(有本如是)’라는 힘있는 네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샘물의 주변에 사당과 누각 등 건물이 있다. 명(明) 나라 때 시인 이본위(李本偉)는 감천누각에 올라 <장액감천루에 올라>라는 제목의 시를 쓰기도 했다.

감천의 북쪽에 둥근 연못이 하나 있는데 샘물이 그 곳에서 지하에 흘러 들어 주변에 수양버들이 휘늘어지고 녹음이 무성하다. 이 곳의 ‘감천관어(甘泉觀魚)’는 한 때 감주 팔경 중 하나였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산단군마장)

장액에서는 산단군마장(山丹軍馬場)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역대 황실이 군사를 주둔하고 군마를 사육하던 장소인 산단군마장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유구한 역사와 아시아 제1, 세계 제2의 규모를 자랑한다.

지세가 완만하고 수초가 살찐 이 곳은 말의 번식과 성장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이다. 기원전 121년에 서한의 장군 곽거병에 의해 세워진 산단군마장은 부지가 2,195㎢에 달한다.

이 곳에서는 3000여년 전에 벌써 말을 사육하기 시작했으며 이 곳에서 교배하여 사육한 산단마(山丹馬)는 명성이 아주 높아 역대 황실은 모두 이 곳을 군마사육기지로 삼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기련산)

경치가 수려한 기련산(祁連山)에는 산발이 기복을 이루고 산마다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며 산봉우리에는 적설이 눈부시고 산자락의 초원에서는 말과 양떼가 여유롭다.

험준하고 신비로운 ‘칠일(七一)’ 빙하와 과일의 향이 넘치는 오아시스 농업, 첨단기술에 의한 농업, 산중의 여러 가지 진귀한 동식물이 기련산 고유의 경관을 연출한다.

유명한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서쪽으로 여행을 가다가 장액의 눈부신 문화와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이 곳에서 1년 이상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사진설명: 장액의 아름다운 채색의 땅)

장액의 유고족 풍토는 더욱 독특하다. 빙하와 설산, 원시림, 초원, 습지, 호수, 폭포, 하천, 계곡, 단하지모를 한 몸에 모은 중화유고풍정주랑(中華裕固情走廊) 명소에서 유고족의 민속문화를 체험하고 유고족의 가무를 감상할 수 있다.

열정적인 유고족들은 자신들 고유의 생활양식을 지켜오며 짙은 향기의 우유차와 아름다운 축가, 양고기 백숙의 육향 넘치는 텐트, 전통적인 양궁, 경마, 수렵, 독특한 의상, 성대한 혼례식, 우아한 민족가무로 방방곡곡에서 모여드는 손님들을 환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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