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수문제
글자풀이
"一衣带水" 이 성구는 하나 일(一)자에 옷 의(衣)자, 띠 대(带)자에 물 수(水)자로 이루어 졌다.
뜻풀이
두 나라 두 지역사이에 있는 강물이나 바다가 옷의 띠같이 좁아보인다는 말로, 두 나라사이에 지리적 장애를 받지 않음을 비겨이른다. 후에는 강이나 바다가 사람들이 교류하고 왕래하는 것을 제한하지 못함을 비겨일렀다.
"띠같이 좁은 강(바다)을 사이에 두다", "강물이나 해협을 사이에 두다", "일의대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유래
현대인들에게 있어 허리띠(衣带)의 역할은 주로 세가지 방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생활필수품이며 둘째는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해주는 것, 셋째는 보기좋게 모양새를 내는데 사용된다. 군인이나 경찰들은 장교용 혁대를 착용하여 특수한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중국 고대에서 허리띠는 중요한 장식품이었으며 한 사람의 정치적 지위를 대표하기도 했다.
"3국연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마 한현제(汉献帝)가 황후의 형제인 동승(董承)에게 허리띠를 하사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허리띠가 고대인들의 생활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조(南北朝)말년, 양조는 장강을 경계로 하여 남조는 진(陈),북조는 주(周)로 역사에서 습관적으로 북주(北周)라 불렀다. 북주말년, 다시는 북주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싶지 않았던 대장군 양견(杨坚)이 수왕조(隋王朝)를 세웠는데 양견이 바로 수문제(隋文帝)이다.
수문제는 왕위에 오르고나서 곧바로 중국을 통일할 준비를 했다. 당시 진조의 황제는 진숙실(陈叔室)이었는데 역사에서는 진후주(陈后主)라 불렀다.
진후주는 음악가와 시인의 재능을 동시에 갖춘 다재다능한 사람인 반면에 나라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진후주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국사를 돌보는 대신 매일 궁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시짓기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대신들도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기 위해 진후주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온갖 달콤한 말로 아부를 했다. 궁궐안에서는 하루종일 노래소리가 울러퍼지고, 궁궐밖에서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만 갔다. 남조의 군사장비가 허술하고 관리들이 부패한데다 한 나라의 왕까지 백성들을 전혀 관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수문제는 바로 이때라는 생각이 들어 천하를 통일할 결심을 내렸다.
그때 한 대신(大臣)이 나서서 수문제를 말렸다.
"진후주가 비록 어리석고 조정을 돌보지 않는 왕이긴 하지만 지은 죄는 없다고 봅니다. 때문에 우리한테는 군대를 동원시킬 명분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에 수문제는 "진후주는 주색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전혀 관계치 않는다. 천하의 군주로서 어찌 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의 백성들을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기원 589년, 수문제는 대장 한금호(韩擒虎), 고영(高颍)을 파견해 군대를 이끌고 진조를 멸망시켰으며, 이로써 전국을 통일했다.
"一衣带水"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