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고궁박물원과 중경(重慶) 중국삼협박물관에서 공동 주최한 "황실보물- 고궁 어용 금은기 전시회"가 삼협박물관에서 열려 상당수의 관중들을 흡인했다. 이번 전시된 100점의 전시품은 전부 고궁박물원에 수장되었던 금은기물로서 고궁내 금은기물의 모든 품종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전시품은 청조 황제들의 어용지물(御用之物)로서 그중 일부 문물은 최초로 고궁에서 "외출"해 대외공개된 귀중한 보물이다.
금은기물은 귀중한 황금과 백은을 기본재료로 하여 가공제작된 기물, 장신구이다. 중국에서 금은기물을 사용한 시간은 3천여년전의 상조시기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최초의 금은기물은 소형의 장식품 혹은 사람들 몸에 패용하는 장신구 등 형식으로 구현되었으며 최초의 금은기물은 춘추전국시기에 출현한 청동기로 볼 수 있다.
양한(兩漢)시기 금은제품은 수량과 품종이 점차 증가되었고 공예기술도 성숙되어 청동공예를 기본상 벗어나 독립적 발전의 추세로 나아갔다. 하지만 대부분 금은제품은 여전히 장식품 형식으로 되어있고 기물 형식은 보기 드물었다. 현재 발견된 북조와 당조 초기의 일부 금은기물을 볼 때 모양과 무늬는 다소 사산 금은기물의 풍격을 띤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페르샤 금은기물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당조는 중국 금은기물 발전의 번영시기로서 금은기물 수량이 급증했을뿐만 아니라 품종이 다양하고 모양과 무늬 풍격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조 사람들은 해외 문화와 자체의 민족문화를 결합해 금은기물제작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으며 생기발랄한 예술적 성과를 창조했다. 당시 궁중 금은기물은 중앙 금은제작실에서 전문 주조했으며 금은기물을 제작하는 공예가도 엄격한 훈련을 거쳐야 했는데 다듬기와 새김 등 간단한 제작 일환에 대한 교육만 해도 4년간이 걸렸다고 한다.
당조이후, 중국 금은기 발전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추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은기물 제품은 또다시 기타 기물과 상호 결합하여 다양한 무늬와 풍부한 장식으로 표현되었다.
명, 청조시기 보석상감이 성행해 그 어느시기의 금은기보다 화려하고 눈부셨지만 또한 당조시기의 독특함이 부족하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