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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기 "청취자의 벗"
2010-02-11 18:12:02 cri
 

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 담당 김태근입니다.

여: 안녕하세요? 임봉햅니다. 연인파 25억을 웃돌것이라는 중국 전통 명절인 음력설 인원 대이동이 고조를 이루는 요즘입니다.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하여 귀성길에 오르는 하루 유동인구만도 수천만을 헤아린다는 요즘입니다.

남: 녜, 해마다 이맘때면 거대한 중국의 에너지를 다시한번 느끼는 기분인데요. 우선 철도, 공항, 도로, 해상 … 모든 교통편이 귀성손님들을 위해 편도를 증설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고향을 향한 중국 농민공들과 직장인들의 그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여: 음력설은 중국인들의 풍속에서 대단원의 명절이지요. 멀리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도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만나러 고향으로 향하고…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믐날 저녁 세계최고의 시청자를 기록하는 중앙TV음력설 야회를 관람하며 손수 빚은 물만두를 음력 새날을 알리는 영시에 온가족이 즐기는가 하면 한해의 평안과 만사대길을 기원하여 터뜨리는 요란한 폭죽소리… 정말 벌써부터 그믐날 저녁을 즐기는 기분인데요…

남: 저희들 조선어방송에서도 해내외 청취자들을 위하여 임봉해씨가 직접 집필을 하여 설날 특집 프로를 마련했죠. 기대가 되는데요. 약방의 감초식으로 약간 흘려주실수 있겠습니까?

여: 녜, 아직까지는 극비로 해야 당일 청취에 신선감을 더해 주겠는데요. 뭐, 그러시다면 간단히 언급을 해드리는 것도 청취자들의 그날 프로 청취에 도움이 될 듯도 싶은데요. … 우선 앞에서도 언급을 했음니다만 중국의 음력설은 단원의 명절이라고 했는데요. 평시에 방송을 만드느라 열심인 저희들 임직원 일가족들이 설을 즐기는 모습을 간단히 담고… 중국 민속 전문가를 초청하여 중국 음력설 풍습에 대해 설명을 듣고 흥겨운 노래가락으로 분위기를 돋구는 등… 한마디로 단란한 분위기로 여러분들께 다가서는 그런 프로로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남: 녜, CRI의 음력설 특집 방송- 방송임직원들과 민속전문가들을 통하여 중국의 음력설 모습을 살펴보고 흥겨운 가락으로 명절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즐거운 한 마당…녜, 여러분 기대해 주세요.

여: 저희들 방송을 듣는 국내 청취자들은 물론 해외 청취자들도 그 풍습이 대체적으로 중국과 비슷하다고 하겠는데요. 한국에서도 설을 계기로 한해동안의 최고 인원대이동을 기록한다고 하네요.

남: 그러니깐 조선 반도와 저희들 방송을 청취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고장에서도 설은 일가족 대단원의 그런 명절이라는 말씀인데요.

한국 천안의 김연준 청취자의 편지사연 설을 기대하는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여: "cri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입춘인 오늘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야간의 눈이 내렸고 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장군의 기세가 아직 누그러지지 않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 올 남북 당국자의 대화와 물밑 접촉이 계속되고 있어 한반도에 찾아 올 평화라는 봄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이 만나는데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고 최근 김정일 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개성공단 관련 회담도 1일에 열렸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회담도 이달 8일에 개성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민간분야도 교류가 재개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조계종은 도선사의 불자 4,000 여명이 3월 중 금강산 신계사를 방문하기로 조선불교도연맹과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규모 불자들의 방북과 함께 금강산 관광도 조만간 재개 되고 남북한의 두 정상이 올 해 만나게 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봄은 곧 다가 올 것입니다.

8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10 상해엑스포와 관련하여 CRI 웹에 별도의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시기적절하며 사진과 동영상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청취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에서는 1012년 개최 예정인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와 함께 홍보가 되고 있으며 여행사는 벌써 상해엑스포를 위한 다양한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2010년 중국 양회관련 인터넷 설문도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아직 중국 양회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다른 정치 제도나 체제 때문일텐데 저는 CRI 웹에서 양회관련 보도를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고 있으니 2010년 양회관련 보도도 기대하겠습니다.

어제 일본의 김영일 청취자님으로 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3년전 대수술을 통하여 얻게 된 질병으로 인하여 요양중이며 일본에서 자라나 한국어를 모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게 되니 부끄러워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74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걷지 못하고 현기병이 있어 불편한 몸이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CRI를 청취하고 인터넷을 즐기시는 그 열정으로 질병도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다가옵니다. CRI 청취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온 가족과 함께 즐거운 설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연준, "

남: 녜, 김연준 청취자께서도 설명절은 민족최대의 명절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저희들 방송임직원과 청취자 모든 분들에게 복 많이 받으시라고 설인사를 전해 주셨습니다.

여: "복 많이 받으세요" 참 좋은 축복이지요. 중국에서는 복을 불러 들인다고 붉은 종이에 복(福)자를 크게 써서 들어서는 문에 거꾸로 내 붙이는 풍습이 있습니다. 즉 복의 도래(到来) 기원하는거죠.

남: 녜, 서울 특파기자시절에 보니깐 한국에서도 중국에서 복의 도래를 기원해서 복자를 거꾸로 거는 것과 비슷한 뜻으로 복조리를 거는 풍속이 있더라구요. 즉 음력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부엌이나 안방, 마루 따위의 벽에 액세서리 처럼 이쁘게 만들어진 조리를 걸어서 복을 불러들인다는 뜻인데요..

여: 아, 그렇지요. 농경민족에게 있어서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므로 그해의 복을 조리로 일어 얻는다는 그런 뜻이네요. 참 행운의 풍습입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들께서도 "복"(福)자, 혹은 복조리를 잊지 말고 걸어두시어 새로운 한해 댁내에 행운을 한가득 끌어들이길 기원하며 중국의 설노래인 "하신년"을 선물합니다.

(노래 "하신년")

남: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평양시 모란봉구역 긴마을 1동19반의 리경섭청취자께서 백두산 리명수폭포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연하장을 보내왔습니다.

여: 배경사진도 특색있지만 특히 연하장내에 조선어 영어 중국어 로어 4개국어로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올려 더욱 인상적입니다.

남: 그리고 손수 눈설이꽃을 그리고 축새해라고 정성스레 쓴 글 또한 따뜻한 정이 묻어 납니다. 감사합니다. 리경섭 청취자님, 마찬가지로 전통명절인 음력설을 맞으며 리경섭 일가와 조선의 청취자 ,이 방송을 듣는 모든 청취자분들께서도 만사 형통하시고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황해남도 과일군 농기계 작업소 곽두석 청취자께서 항공편지로 신년인사를 전해왔습니다.

"CRI조선어 방송부 선생님들 모두가 건강한 몸으로 방송편집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방송을 통하여 선생님들과 마음을 이어온 2009년 한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귀 방송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해빛도 따사로운 6월에 귀방송 대표단 선생님들과 상봉하여 의견들을 나누면서 우의의 정감을 더욱 두터이 하였습니다. 그때 남긴 두 장의 사진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앞으로 귀 방송의 열성청취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탄없는 의견을 표달하면서 날로 발전하는 중국의 현실과 중국인민이 우리 인민에 대한 천선과 우의의 정을 더욱 두터이 하려는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새해 2010년에 선생님들 모두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 사업에서의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청취자 곽두석 올림"

남: 지난번 청취자의 벗 프로에서도 곽두석 청취자분의 편지 사연이 소개가 되었었는데요. 곽두석청취자의 편지사연을 읽노라면 글처럼 시원시원한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 앞으로 "귀방송의 열성청취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탄없는 의견을 표달할 것이라는 말씀과 중국의 경제 발전과 중조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우정"을 돈독히 하려는 심정을 여실히 보여준 점이 바로 그런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녜, 새봄이 새록새록 찾아 듭니다. 백리청춘과원의 꽃향기속에 곽두석청취자의 사업과 생활이 꽃처럼 아름답길 기원합니다.

(과도음악)

남: 올해 7월2일은 저희들 CRI 조선어방송 개시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저희들 방송부서에서 각종 기념 행사 준비사업에 들어갔는가 하면 해내외 청취자들이 축하글을 보내오기도 합니다. 지난세기 50년대 중반때로부터 저희들 방송에서 정열을 쏟은 원로방송인 최금란선생이 추억의 수필을 전해 오셨습니다. 현재 방송에 몸담고 있는 저희들에게 훈훈한 감명을 안겨주는 좋은 글인데요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배경음악 속에)

여: "시간을 다투는 사람들 속에서" –

"우리들이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연변교육출판사에서 사업한지 3년째가 되던 해인 1956년 8월초, 우리는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새봄을 맞아왔다. 연변 주위 선전부 간부과로부터 중앙인민 방송국으로 조동된다는 조동령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뜻밖의 일이어서 어정쩡해졌다. 순간 좋은지 기쁜지 일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는 인사조동이 극비여서 사전에 풍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서, 수도 북경에 가서 그것도 당시에 가장 성망이 높았던 중앙인민방송국에 가서 사업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 한 일이었다. 그날밤 우리 내외간은 기쁨에 들떠서 잠마저 설치었다.

북경에 도착하니 이미 새로 지은 소수민족 아빠트의 2층에 우리집이 마련되어 있었다. 침실 두칸에 화장실, 욕실, 주방이 따로 있었고 방마다에 쌍침대와 책상, 걸상이 놓여져 있있다.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설비가 이렇게 구전한 새 아빠트에서 살아보게 되었다.

우리 내외간은 중앙인민 방송국에서 남편은 민족부조선어조에, 나는 대외부 조선어조(지금의 중국국제방송조선어부)에 배치되었다.

내가 사업하는 대외부 조선말 방송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방송에 속하는데 방송에서는 '베이징방송국'이라고 하였다. 나는 지금도 내 생일날을 기억하듯 베이징방송 조선어방송의 개시일 1950년7월2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조선어 방송은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성과와 대외정책을 제때 소개하는 종합방송으로서 시간마다 보도와 논평, 시사해설을 보내는 외, 요일에 따라 여러가지 내용의 고정프로를 꾸리여 조선의 청취자들이 중국을 요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방금 갔을때는 단층집에서 사무를 보다가 얼마 안되어 새청사로 이사하였는데 그때에야 나는 방송사업이 바로 국가의 기요 선전부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문에 들어서면 해방군 전사가 총을 들고 서 있는데 중앙인민방송국 사업일군 명찰을 보여야 들어가게 하였는데 하루에 몇번을 드나들어도 번마다 그러했다. 해방군 전사는 늘 드나드는 우리를 모를리 없었지만 때로는 옷을 바꾸어 입느라고 명찰을 가져오지 못하였는데 시간이 급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로 사절하였다. 하는 수 없이 두덜거리며 집에 돌아가 명찰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또 방송실 녹음실로 들어갈 때도 복도에 해방군 전사가 지켜서서 엄격히 검사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의 안전은 나라의 여론 성망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출판사에서 편집사업을 하던 나는 방송국에 오자 시간과 싸우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국가의 대사나 외교활동, 큰 사건 등이 벌어졌을 때면 발생된 사실의 진상을 가장 빠른 시간내에 청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밥도 제때에 먹지 못 하고 긴장히 일하면서 뛰어 다녀야 했다. 그때 우리는 번역을 위주로 하였다. 뉴스센터에서 원고가 발급되면 달려가 가져다 한쪽으로는 번역하는 족족 한 사람이 한두 장씩 들고 방송실로 달려가 방송원에게 넘긴다. 그 다음에 번역되는 원고는 또 다른 사람이 받아 쥐고 릴레이를 하듯이 달리였다. 방송원은 그 원고들을 읽어 볼새도 없이 생방송을 하였다. 그때면 방송원 뒤에 한 사람이 서서 같이 원고를 보아주었다. 그러다가 혹시 틀리게 읽은데가 있으면 뒤어섰던 사람이 손가락으로 그곳을 짚는다. 그러면 방송원은 인차 알아차리고 그 부분을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시정하였다.

이런 날이면 한차례의 긴장한 전투를 치르는 격이었다. 누구나 높은 책임간으로 질을 담보하면서 속도를 다그쳐야 하였다. 이런 일들이 가끔 있었다.

나는 대외부 조선어조에서 음악편집사업을 하였다. 1959년부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중조 방송협정을 맺고 30분 프로를 한주일에 한번씩 서로 교환하여 대방의 중앙 방송을 통해 직접 나가도록 하였다. 그러면 방송효과가 좋고 청취율로 높아 선전효과도 컸다.

이 일은 힘들고 간고하였다. 우선 내용의 질을 담보해야 했고 두번째로는 제시간에 어김없이 30분 프로를 만들어 그 테이프를 비행기로 조선의 중앙방송에 보내주어야 하였다. 나는 매일 나가는 음악프로의 편집을 담당하는 외에 조선으로 보내는 교환프로의 전반 배음과 음악프로를 책임져야 하였다.

매 한기의 교환프로를 만들어 보내는 것도 한 차례의 전투였다. 이때 우리들은 우리 프로가 나라를 대표함으로 나라의 위망에 손상을 주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책임감이 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음악편집으로서 음악프로를 편집할 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작품, 가장 명망있는 음악인, 가장 유명한 가수, 음악단체, 민족악기 등을 소개하기 위해 애썼다. 인민음악가 선성해의 '황하 대합창', '동방홍'과 그의 작자 리유원, 정율성과 그의 작품소개, 저명한 작곡가 리환지, 구희현소개, 중국의 명가수 음악회, 중앙악단, 중앙오페라 극단, 중앙민족 가무단, 총정치부 가무단 등 음악단체소개, 민족악기- 몽골족의 마두금, 묘족의 로생, 한족의 호금… 등을 소개하였다.

방송을 듣고 여러가지 내용들의 편지가 조선으로부터 날아왔다. 나의 또 한가지 임무는 청취자들이 보내온 편지에 답장을 쓰는 것이었다. 편지중에는 요청음악이 많았는데 특히 영화 주제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회답편지를 쓰는 것도 마땅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그들에게 일일이 답복 편지를 쓰다보니 늘 부지런히 돌아쳐야 했다. 그대로 일이 손에 잡혀 익숙해 지니 바쁜줄을 모르고 해제끼였다.

베이징방송, 오늘의 중국국제방송국에서 사업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언간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흐를수록 정들고 보람을 느꼈던 중국국제방송국에서의 나날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사업터를 떠난 것이 괴로워 한동안을 방송을 아예 듣지도 않은 역사가 있다. 방송만 들으면 가슴이 쓰려나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방송에 대한 사랑과 그 미련 때문에 만년에 와서는 방송을 열심히 듣는 청취자가 되었다. 젊음의 심장에 정열을 지펴주던 방송사업, 그것은 이미 우리의 심신과 혈액속에 깊이 배여 있었던 것이다. "

남: 녜, 최금란 선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려웁던 환경속에서 중국의 대외 선전사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던 노일대 방송인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요즘에 와서는 선배님의 말씀처럼 방송에 대한 진지한 사랑으로 저희들 방송을 열성껏 청취하시면서 저희 방송인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하시는데요. 선배님들의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CRI 방송이 보다 청취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방송으로 거듭나도록 저희들도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여: 이외에도 길림성 반석시의 이춘자 청취자, 장춘 객차공장 유춘건청취자, 연길시의 홍완식청취자, 흑룡강성 목릉시 하서향 기경촌의 박동호 청취자 베이징시 청하 소영간부휴양소의 장안화 청취자 등 많은 분들의 편지 사연이 들어와 있지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시간상 관계로 이름만 말씀드림을 양해 구합니다.

(노래 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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