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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기 "청취자의 벗"
2010-04-09 10:51:40 cri

 

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 담당 김태근입니다.

여: 안녕하세요? 임봉햅니다. 중국에서는 청명절을 국정휴식일로 하면서 올해는 주말 휴식일까지 겹치며 3일간의 휴가를 즐겼습니다.

남: 그렇지요. 비록 베이징은 봄날의 황사현상때문에 짜증스러울 때가 많지만 계절앞에서는 자연도 머리를 숙인다고 할까요? 거리의 잔디와 꽃나무들이 봄을 알리고 공원에서는 일가족이 화원에서 즐기는 모습들입니다.

여: 지난번 저희들이 방송중에 오사카에 계시는 김영일 청취자께서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고 부인과 함께 봄날의 벚꽃축제를 즐기시라고 하셨는데요. 녜, 이젠 벚꽃이 만개를 지나서 흐트러질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 벚꽃이라고 하니 말씀인데요, 서울 여의도의 벚꽃거리도 정말 봄의 낭만이 넘쳐 흐르는 풍경이지요.

평양에도 아마 천리마 거리의 살구꽃이 만개했을 거고 뒷이어 모란봉의 살구꽃에 이에 갖가지 꽃들이 봄다툼을 하잖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봄은 낭만과 서정의 계절입니다.

여: 요즘 베이징도 거리와 공원의 매화꽃, 살구꽃이 만발하며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이곳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청명휴가기간 주변 공원과 산악을 찾은 시민들이 평시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고 합니다. 저희들 청취자들도 산과 들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한다는 편집니다.

모모라고 이름을 단 네티즌의 글입니다.

"173기 청취자의 백과 잘 들었습니다. 방송듣는 주말 마침 날씨가 화창해서 근처로 등산을 갔다가 봄나물을 캤어요, 초봄이라 아직은 그다지 많이 캐오지는 못했지만 남편과 같이 비빔밥 해 먹을 양은 되었어요, 그리고 냉이가 정말 다른 봄풀이랑 많이 비슷했던지 저의 '새신랑'은 여러번 교정을 해준 나머지 마침내 올바르게 냉이 한 줌을 캐었답니다.^^"

남: 녜, 도심의 혼탁속에서 모대기다 주말에 집식구들과 함께 들놀이를 하고 봄나물도 캐고 … 기분전환에 좋고 건강에도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건네티즌이 보내온 글입니다.

"북경은 황사가 심하네요. 중국에서 4월의 첫 주를 식목일로 해서 전국적인 식목활동을 진행한지도 20년이 넘는 것 같습니다. 그사이 중국이 녹화사업에 동원된 인수가 연 120억명에 달하고 460여 억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고 삼림피복율이 20% 에 달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숫잡니까? 특히 올해에도 후진타오 등 중국국가지도자들이 봄철 식목활동에 참가하며 중국대지의 녹화사업을 호소하셨는데요. 심는것도 중요하지만 심은 나무를 잘 가꾸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는 심어 10년이면 숲을 이룬다고 합니다. 460여억 그루만 숲을 이룬다고 해도 그 삼림자원은 얼마입니까? 그만한 노력이면 황사현상도 많이 줄어야 할 것 같은데 최근년간 황사는 점점 심해지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황사가 주변 나라들에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말 인간이 자원을 아끼고 자원을 가꾸며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무분별한 개발은 부의 창조가 아니라 삶의 환경에 대한 파괴, 자연에 대한 파괴입니다.

산서 왕지아링 탄광투수사고로 갱내에 묶여있던 153명중 115명이 8주야의 구조사업끝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접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중국정부가 적극적인 구조대책을 실시한 생명의 위대한 찬가입니다. 구조된 분들에 대한 건강치료를 잘하고 아직도 갱내에 묶여있는 탄부들도 분초를 다투어 구조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국 남부 운남의 가뭄과의 투쟁에서도 좋은 결실이 이룩되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우리 인간이 끝없는 탐욕에서 잠깨고 자연과의 조화에 보다 힘다하기를 기원하며 CRI가 그런 기사들을 많이 싣기를 바랍니다. "

여: 산서 왕지아링 탄광 투수사고에 대한 상세한 언급, 특히 8주야의 분전끝에 115명을 극적으로 구조한 사건을 위대한 생명의 찬가로 극찬하셨습니다. 물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우선책이겠지만 사고가 발생한 후 정부로부터 동원되어 적극적인 구조로 생명을 구해낸 그 과정은 말씀대로 생명의 찬가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녹화사업에 대해 치하하고 자연과의 조화로움에 대해 강조를 하셨는데요. 정말 옳은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정부로부터 친환경형경제 발전에 대해 중시를 돌리고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가 함께 힘을 돌려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간주)

남: 상해엑스포 개막일도 이제 20여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상최대규모인 상해엑스포의 각항 준비사업이 원만히 마무리 되고 시운행에 들어간다는 보돕니다. 한편 저희들 방송이 진행하는 엑스포 지식경연도 여러분의 참여로 활기로운 모습입니다. 연길의 박병옥 청취자께서 지식경연 정답을 작성한 연속 세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중 한편만을 읽어 드립니다.

여: "중국국제방송조선어부 선생님들에게

저는 국제방송애청자의 한사람으로서 70도 훨씬 넘은 퇴직교원 할머니로서 마음만은 하냥 젊어지고 싶은 생각에서 오늘 지식경연에 참가하려 필을 들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귀 방송을 청취하는 시간은 새벽4시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은 명절을 기다리는 소녀의 심정과도 같이 즐겁고 기대로 부풉니다. 편집사업에서 힘다하시는 선생님을의 유창한 목소리에 솔깃하여 귀를 기우리고 있던차 아침내용에서 지식경연 해답을 찾으라기에 이렇게 즐거운 심정으로 답을 찾기에 노력하였으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정답은 생략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에도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희망의 새봄이 찾아옵니다. 여러분의 방송사업이 새봄처럼 희망차고 성과이룩하길 기원합니다.

연변의 애청자 박병옥"

남: 녜, 박병옥 청취자, 새벽방송이지만 명절을 기다리는 소녀의 심정과도 같이 저희들 방송을 기다리고 열심히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청취자 분들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저희들 방송인들도 감동속에 새힘이 솟군 하는거죠.

여: 연변지역에 많은 청취자들이 계시지만 방송시간때문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저희들도 그 점을 충분히 검토하고 해당부문과 토의하여 좋은 시간대로 방송시간을 변경하는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아마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러분의 변함없는 애청 기대합니다.

(간주음악)

남: 개혁개방속에서 외국자본과 외국기업이 중국으로 물밀들이 진출하는 것은 물론 중국인들의 해외에 진출이 붐을 이루었습니다. 언어와 문화 등의 원활한 소통으로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국행을 많이 선택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적응되고 이룩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 소통과 정감이 필요합니다. 요녕성 심양시 김옥련의 수깁니다.

(여성아나운서 낭독)

"나이 환갑에 고국에서 가정보모로"

"갓마흔에 첫 버선이라고 나는 거의 환갑나이가 되여서야 한국땅을 밟아보았다. 물론 관광길이 아니라 노무길이였지만. 때는 20세기 90년대 중반이라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4년간 가정부로 보냈던 세월은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한국에 가서 첫 몇달은 식당일을 했는데 일이 서툴러 오래 있지 못하고 다시 택한것이 가정부였다. 집주인은 어느 출판사 사장이였고 부인은 대학교교수였으며 몸이 불편한 노모가 계셨는데 집이 두채라 따로 거주하였다.사장이 나를 데리고 할머니가 거처하는 집으로 갔는데 그 집도 굉장히 컸다. 집에 들어서니 백발이 된 할머니가 계셨는데 소개대로 걸음걸이가 불편했고 허리가 꾸부정했다. 당시 76세라고 하지만 얼굴엔 주름하나 없었다. 이렇게 나는 환갑나이에 가정부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는 아침 5시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주방을 깨끗이 청소한후 밥을 지었다. 6시반에는 어김없이 밥상을 차려야 했다. 식사후 설겆이가 끝나면 집청소를 시작, 두집 다 38평(한국 평수)좌우라 방만 8칸이고 화장실이 4개 거기에 객실, 식사칸, 베란다까지 일일이 쓸고닦고 하자니 아름찼다. 게다가 노인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통에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첫날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자리에 들었는데 걱정이 앞서 도무지 잠을 들수가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이 집에서 쓰는 물건은 거의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것이였다.

이튿날 눈을 뜨자부터 노인의 《지시》가 뒤따랐다. 밥은 압력밥솥에 오곡밥을 해라, 반찬은 뭘해라, 양념은 무슨 양념을 얼마나 넣어라 끝이 없었다. 3, 40년을 주부로 있었지만 밥한끼 차리는게 이렇게 까다로울줄은 몰랐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 사장이 육개장을 끓이라고 해서 예 하고 대답하고는 곧장 시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개고기 파는데가 없어 헛물만 켰다. 저녁에 사장이 왜 육개장이 없냐고 해서 개고기 파는데가 없어서 못사왔다고 했더니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였다. 이렇게 삐걱삐걱 한주일이 지나 좀 적응이 되는가싶었는데 이번엔 할머니 생신이란다. 그것도 집에서 쇤단다. 나는 더럭 겁이 났다. 그런데 다행히 나는 적어준대로 물품만 구입해오면 되였고 료리는 전문 료리사를 청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로인께 생일선물로 무얼 드릴가 생각하다가 큰 맘 먹고 돈 만6천원을 주고 먹음직한 복숭아 10개를 샀다. 내가 로인에게 장수하시라며 복숭아를 드리니 노인은 눈이 휘둥글해서 웬 복숭아냐고 했다. 내가 중국에서는 노인들에게 장수하시라며 생일에 복숭아를 선물한다고 말하자 로인은 돈도 없으면서 뭘 이런걸? 하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피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간, 손님이 다 가고 설겆이를 하고있는데 노인이 나보고 먹다남은 맥주를 화초에 주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맥주를 그대로 화초에 쏟아부었다. 이와 동시에 술잔이 날아오면서 노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년아, 생맥주를 그대로 주면 화초가 다 죽지 않느냐, 응, 화초가 죽으면 네가 배상해라," 노인의 그 서슬에 내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지만 로인은 계속 줄욕을 퍼부었다. 나는 참다못해 눈물을 쏟았다. "그래요, 배상하지요. 한달 월급이 모자라면 두달 월급이라도 좋으니 꼭 배상할테니 걱정마세요." 그제서야 노인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일은 끝난게 아니였다. 며칠후 노인은 느닷없이 날더러 그만하고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였다. 서로 말을 못알아들어 너무 힘들다는것이였다. 내가 한달만 더 지켜봐달라며 애걸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저녁에 아들이 돌아오자 노인은 또 그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들은 《어머님, 좀 더 지내봅시다. 마음씨 착하고 성실하니 두 달만 더 지내봅시다. 새 사람이 와도 마찬가지예요.》 노인은 아들말이라면 잘 듣는편이라 나는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튿날 나는 당장 수첩을 사서 그날부터는 수첩에 하나하나 메모를 해두었다가 잘 모를것이 있으면 뒤져보군 했다. 나는 노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온갖 정성을 쏟았다. 장보고 올 때면 가끔씩 노인이 즐며먹는 옥수수튀김, 찐빵같은것을 사다주었고 그러면 바깥출입을 못하는 노인은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었다. 이렇게 로인과의 사이가 좀 가까와졌을 때 나는 전에 온 보모들은 왜 나갔는가고 물었다. 그랬더니 노인은 누구는 땀을 너무 흘려 더럽고 누구는 기침을 너무하고 누구는 장보면서 돈 떼먹고 해서 내보냈다고 하였다. 나는 이런 말들을 흘려버리지 않고 수첩에 메모해 놓고 항상 자신을 주의시켰다. 땀이 나면 노인 몰래 인차 씻었고 밤에 기침이 나면 이불을 뒤집어썼다.

노인은 무서운 《구두쇠》였다. 채소를 다듬다가 푸른 잎 한잎만 버려도 금방 욕이 터져나온다. 지어 나물을 데칠 때도 물에서 그냥 데치면 안된다. 조리에 담아서 물기를 뺀 다음 데쳐야 가스도 절약하고 시간도 절약한다는것이다..

이렇게 1년이 지나는사이 나와 노인은 어느덧 정이 들어있었다. 노인은 한낮에 둘이만 있을 때면 나에게 시집와서 고생한 이야기,령감한테 괄시받던 이야기로 못하는 이야기가 없었다. 노인에 따르면 령감은 45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둘이 같이 사는동안 사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했다며 죽어도 령감생각은 하지 않을거라고 했다. 반면에 아들에 대해서는 자랑이 끝이 없었다. 아들은 효자중 효자여서 전처가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혼하였고 지금 사는 처도 어떻게 《교육》을 했는지 노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받아들인다고 했다.

노인은 부러울것없이 잘사는 처지였지만 침대보나 옷가지들을 손수 재봉침에 박아서 썼다. 그런데 년세가 많아 손이 떨려 바느질이 서툴렀다. 그래서 내가 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의심하는 눈치더니 내가 능숙하게 재봉침을 다루는것을 보고는 자네 참 재간둥이구만 하면서 일을 마음놓고 맡겼다. 그후부터 나는 할머니옷, 사장님옷을 고쳐드리고 내옷도 스스로 고쳐서 입었다.

그렇다고 노인이 공짜를 바라는것은 아니였다. 나는 번마다 장을 보고와서는 의례 결산장부를 로인에게 드려야 했다. 이때의 장부는 10원이 차이 나도 벼락이 떨어진다. 그런데 한번은 장을 보고오면서 결산을 해보니 거스름돈 2,400원이 더 많았다. 모자라면 몰라도 남는 돈이야 칭찬하겠지 하고 곧이곧대로 로인에게 말했더니 웬걸? 당장 더 받아온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호통이였다. 물론 좀 억울하긴 했지만 그러는 그 로인이 더욱 존경스러웠다.

이렇게 이 집에서 3년째 되던 해에 나는 참으로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게 되였다. 집에서 편지가 왔는데 내용인즉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신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는것이였다.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래도 낮에는 내색을 못하고 밤이면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쏟았다. 그후 나는 장보러 갈적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다. 그랬더니 신장기증자를 찾으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말이 쉽지 불법체류자인 내가 어디 가서 그런 사람을 찾는단 말인가? 나는 고민고민끝에 렴치불구하고 사장님께 이 사연을 여쭈면서 도움을 청했다.

그로부터 며칠후 사장부부가 나를 찾았다. 뜻인즉 신장을 기증받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증자가 나타나더라도 모든 조직이 부합되여야 하니 장담할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돈을 대줄테니 중국에서 수술을 받으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사장부부는 한화 천만원을 내놓았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랬더니 사장은 500만은 우리가 돕는것으로 하고 나머지 500만은 집에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월급으로 갚으면 된다면서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하였다. 사장부인도 이 일은 할머니도 동의하셨으니까 근심 말고 우선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무작정 돈을 안겨주었다. 돈을 받아든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후에 며느리는 그 돈으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였고 지금도 튼튼한 몸으로 생활하고있다.

그번 일이 있은후로 나는 완전히 이집의 한 가족일원으로 생활하였다. 노인도 제가 죽을 때까지는 중국에 돌아가지 말고 자기와 같이 살자고 입버릇처럼 말하였다. 나도 그러기를 원했지만 내가 이 집에 온지 4년째 되는 해 영감의 건강상태가 나빠져 부득불 귀국을 택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귀국한후에도 그집과의 연락은 끊기지 않았다. 로인은 사흘들이로 전화를 걸어와 보고싶다면서 후에 들어온 보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해 죽겠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전화를 할적마다 다시 한국에 나오라고 사정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은 아들의 배동하에 그 불편한 몸으로 우리 집에까지 찾아왔었다. 그때 노인은 우리 집에서 3일간 묵었는데 그 3일간 우리는 밤새는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떠나는날 다시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번 만남이 나와 노인의 마지막 만남이 될줄이야. 그로부터 1년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던것이다. 나는 오래오래 먼 고국을 바라면서 로인의 명복을 빌었다...

(과도음악 , 임해숙의 청취자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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