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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화석의 고향-강원을 찾아서
2011-09-29 14:17:19 cri
 

그는 관동의 운치를 다분히 담고 있는 자연의 기관입니다. 그는 소장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문인묵객들의 숭배를 받은, 천하에 둘도 없는 자연의 보배입니다. 그는 또 옛날 황제가 애용했던 진품이며 지금은 인민들을 치부의 길로 이끄는 공예품입니다. 그가 바로, "장백산 제1석"이라 불리는 송화석입니다. 추천코스 그럼 오늘은 저와 함께 "중국 송화석의 고향"-길림성 백산시 강원구로 가서 송화석의 매력에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간주

송화석은 색상이 장백산 소나무 수림중의 황록색의 송화와 비슷하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다. 송화석의 기원은 수억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당시 지구의 판도활동이 강렬해 침적되고 고압과 고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장백산맥 구역의 조산운동 역시 강렬했기 때문에 이곳은 송화석의 주요분포구역으로 되었다.

색상이 화려하고 형태가 다양한 송화석은 일찍 중국 고대시기에 발견되었으며 청나라에 이르러 송화석으로 만든 벼루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진품중의 진품이었다. 때문에 송화석은 길상과 행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장백산 송화석 연구회 비서장이며 길림성 백산시 강원구 송화석 산업발전사무실의 주임인 이강씨는 돌소장 애호가이다. 송화석의 특점과 문화배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소개했다.

음향1

<송화석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8억년에서 10억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송화석은 보배라구 할 수 있죠. 송화석의 다른 한 특점은 독이 없고 냄새가 없고 복사가 없다는 점입니다. 다른 것들은 복사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는 국가에서 검증을 거친 것입니다. 이 또한 송화석의 미묘한 점이 아닐가는 생각입니다. 4대 유명 벼루에 송화석 벼루가 없는 이유는 송화석 벼루는 황궁에 깊이 간직되어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황궁의 공신들도 황제가 송화석벼루를 상으로 줘야만이 볼 수도 쓸수도 있었습니다. 민간의 백성들은 아예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

간주

송화석은 "귀족"신분인데다, 송화석을 생산하는 장백산맥이 청나라에 의해 "용맥"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청나라에 이르러 장백산은 무려 200년간 봉산되었으며 송화석의 채굴도 민간에서는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송화석은 한때 민간에서는 아예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지난세기 90년대에 이르러 송화석은 수백년간의 적막을 뚫고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강씨의 말이다.

음향2

<송화석이 민간에서 발견된 것은 20여년전인데 한 소장애호가가 도처에 다니면서 송화석을 찾다가 끝내 발견한 것입니다. 송화석 산업은 비록 민간에서 20여년의 발전을 거쳤지만 아직도 규모를 형성하지 못했으며 아주 산재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송화석산업에 대한 대폭 지원을 거쳐 민간에 산재했던 산업들이 다시 모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간주

이강씨는 강원지역은 장백산맥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풍부한 송화석 광산자원비축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07년이래 강원구는 송화석 산업을 대폭 발전시켰고 "중국 송화석의 고향", "중국 관상석의 고향"이란 미명을 얻게 되었다. 강원의 당위원회 서기 이우충씨의 말이다.

음향3

<강원은 송화석산업을 발전시키면서 주로 어떻게 장백산 문화를 송화석을 통해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송화석산업을 부민(富民)산업, 특색산업, 문화산업으로 부상시킬 것이며 송화석을 강원의 도시명함으로 만들 것입니다.>

간주

현재 강원구 송화석산업은 초보적인 규모를 형성했다. 짧은 수년간 강원에는 중국송화석박물관, 중국송화석예술관, 장백산기석문화시티, 원림석시장, 송화석산업가공단지를 일체화한 "두개 관, 하나의 시티, 하나의 시장, 하나의 단지"란 송화석 산업체계가 형성되었다. 이우충 서기는 송화석산업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현지 정부에서는 정책지원, 자금투입, 교육육성 등을 망라한 다양한 조치를 출범했다고 소개했다.

음향4

<송화석산업을 부추기기 위해 우리는 우혜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다시 말해 3년안에 어떤 것은 세금징수를 면제하고 어떤 것은 세금을 연말에 다시 반환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송화석산업이 늦게 시작되었기 때문에 송화석공예에 종사하는 기술인원들의 수준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송화석의 공예수준 제고에 아주 큰 중시를 돌리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우리는 전문 절강, 안휘 등 성에 가서 고찰하고 그들을 통해 선진기술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와서 기술인원을 육성하도록 함으로써 점차 현지의 가공공예수준을 제고시켰습니다. 그리고 인재육성면에서 취업국 육성센터와 길림성임업기술대학에 전문적인 전공과목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인재육성에는 전문자금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무료로 진행됩니다.>

간주

현지 정부의 지지에 힘입어 송화석산업은 강원구에서 빠른 발전을 가져왔으며 현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경제효익을 가져다주는 부민산업으로 점차 부상했다. 강원구 송화석산업발전사무실 주임 이강씨의 말이다.

음향5

<우리는 송화석산업의 발전을 통해 인민들의 치부를 견인했습니다. 강원에는 27만명의 인구가 있는데 송화석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만명이 넘습니다. 이 만명이 일가 세식구를 먹여 살린다고 치면 3만명의 인민들이 치부에 성공한 셈입니다. >

간주

송화석은 강원인에게 치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어떻게 송화석이란 재생불가능자원을 보호하는가 하는데도 의문을 가져다주었다. 산업발전의 지속성을 유지하여 송화석이 오래동안 강원인에게 복음을 가져다주도록 하는 문제는 강원인들에게 직면한 중요한 문제였다. 이우충 서기는 강원은 장백산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생태보호는 그 어떤 산업을 발전시킴에 있어서 모두 제일가는 과업이라고 표시했다.

음향6

<송화석은 재생이 불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자원이 유한합니다. 때문에 과학적으로 개발하고 합리하게 이용해야 하며 보호와 개발을 똑같이 중시해야 합니다. 이를 큰 원칙으로 삼고 송화석산업개발에 대한 기획을 잘해야 하며 질서있게 개발이용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유한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입니다. 가공능력이 크고 부가치가 높은 기업에 대한 배치를 강화할 것입니다. 세번째는 송화석자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개발일환에서 법집행을 강화하고 운수일환에서는 전문부문을 내와 감독하도록 하며 가공일환에서는 가공자재의 내원이 합법적인지를 감독해야 합니다.>

간주

송화석은 기석업계의 새싹으로 아직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송화석의 지명도를 높이고 브랜드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강원은 최근 년간 전시참가, 전시회소집 등 여러가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송화석을 홍보하고 있다. 이우충 서기는 많은 사람들이 송화석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강원은 연속 3년간 장백산 송화석 박람회를 열었으며 또 베이징인민대회당, 전국정협예식장, 상해엑스포, 동북아박람회 등 곳에서 송화석과 송화석벼루를 전시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노력을 거쳐 송화석은 또 홍콩, 대만, 일본, 한국, 유럽 등의 고객들을 흡인하기도 했다. 현재 강원은 이미 송화석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국문을 나가기"란 전략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잠룡연방(潛龍硯坊)회사는 강원 송화석제품 생산기업에서 용두기업에 속한다. 회사의 부총지배인 심경춘씨는 지금 회사는 송화석문화브랜드를 창조해 송화석이 국문을 나서도록 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심경춘씨의 말이다.

음향8

<그 어떤 문화도 모두 그의 지역성이 있습니다. 송화석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송화석은 두가지 문화로 구성되었는데 하나는 장백산 지역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청나라의 궁정문화입니다. 이런 문화적인 내함이 없다면 송화석의 진귀한 존재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 지어 러시아 극동지역도 장백산문화와 많이 얽혀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수출을 고려하고 있는데 비록 문화는 다르지만 장백산문화라는 이 캐리어가 있습니다. 예하면 우리가 개발한 '홍색주제시리즈'의 송화석제품은 바로 '소련홍군과의 연합항전'을 계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소련 홍군이 동북에서 연합작전을 펼칠 때 그 발밑에 바로 송화석이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송화석과 소련홍군을 연결시키고 다시 오늘날의 러시아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간주

현재 송화석산업은 이미 길림성 문화산업 발전계획에 속했으며 길림성은 <송화석산업 지원발전에 관한 약간의 정책>도 정식 출범해 송화석산업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에서 송화석, 송화석벼루, 송화석재를 위주로 한 공예품과 기념품 등은 100여가지가 넘는다. 2011년 강원의 송화석제품 판매 총액은 약 8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송화석은 과거의 청나라 국보에서 지금은 민간치부의 보배로 둔갑했으며 머지않아 장백산문화를 품고 국문을 나서 세계로 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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