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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화석의 고향-강원을 찾아서
2011-09-29 14:17:19 cri

신비한 서하왕조(西夏王朝)

기원 11세기 초, 현재 중국 판도의 서북쪽에서는 새로운 왕조가 궐기했습니다. 이 왕조는 나중에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몽골대군의 서진침략을 막아냈을 뿐만아니라 세계에 가장 일찍한 활자인쇄품 실물을 남겨주었고 중국에는 유일하게 보존이 완벽한 고대 국가법전을 남겨주었으며 후세들에게 둘도 없는 문화재를 남겨주었습니다. 후세인들은 비밀같은 이 왕조를 "서하(西夏)"라고 불렀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와 함께 서하왕조의 고향인 중국서북의 녕하회족자치구로 가서 신비의 발자취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음향1

11세기 초부터 13세기초까지 200년동안, 중국 고대 서북유목민족인 강족(羌族)의 한 당항족(黨項族)이 주체가 되어 오늘 날의 녕하회족자치구를 중심으로 하는 서북지대에 서하왕조를 건립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함께 했던 중국의 금조와 남송 2대 왕조와 병립하게 되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그 당시를 "천하를 세개로 나누어 그 중의 하나인 서북을 2백년간 통치했다"라고 형상적으로 비유했습니다. 서하는 나중에 몽골군대에 의해 멸망되었고 점차 중국 한족과 기타 각 민족에 융합되었습니다.

서하인들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독특한 문자를 창조했고 당시 선진기술을 장악했습니다. 현존해있는 대량의 정교한 문화재들과 진귀한 고전도서 그리고 역사유적들이 이 점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사람들을 놀래운 서하유적은 녕하회족자치구 소재지인 은천시 서쪽교외 하란산 동쪽기슭에 있는 서하왕릉입니다. 왕릉은 면적이 53평방킬로미터이며 9개의 제릉이 규칙있게 분포되어 있고 253개의 순장무덤들이 바둑알처럼 총총히 널려있습니다. 서하왕릉은 현재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지면유적이 가장 완정한 제왕릉원의 하나로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서하문화재 고고연구소의 우달생(牛達生) 연구원은 지금도 당시 서하왕릉을 처음 보았을 때의 격동을 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향2

<가보았을 때 왕릉이 엄청 크고 황막하고 신비했고…아무튼 그 무어라고 딱히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속에 얼만큼 무엇이 들어있는지 첫눈에는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음악

수백개의 원추형 황토무덤들이 드넓고 황페한 하란산기슭의 모래밭에 널려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마치도 하나하나의 산언덕처럼 보입니다. 비록 약 천년의 풍상을 겪어왔지만 이런 무덤들은 여전히 단단한 바위마냥 그대로 서있습니다. 비록 외형은 이미 훼손되어 완전하지 않지만 그 틀만은 여전히 쓰러지지 않았으며 일종의 굴복을 모르는 견인함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음향3

왕릉을 보러 온 여행객들이 늘 발걸음을 멈추는 곳은 바로 세개의 조형이 특이한 높은 돌조각상 앞입니다. 사람같기도 하고 야수같기도 한 이런 돌조각상들은 얼굴은 둥글고 두 눈이 튀어 나왔으며 뾰족한 이발을 드러내놓고 두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머리와 어깨가 나란히 하고 하지는 꿇고 있으며 상체는 튼실하고 주먹을 쥐고 있습니다. 조각상의 조형은 사나워보이지만 흉악하지는 않으며 한번 보면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거개의 여행객들은 이 조각상이 구경 무엇때문에 만들어졌는지 궁금해 하는데, 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 백빈(白濱) 연구원이 그 의문을 풀어주었습니다.

음향4

<사실상 조각상들은 장사처럼 궁전의 주추와 돌기둥의 기초를 떠이고 있습니다. 바로 주춧돌인셈이죠.>

음악

이 특유한 돌조각 조형은 서하 조각기예의 뛰어남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독특한 형상 또한 현지 관광기념품 조형의 우선 선택으로 되어 필통에서부터 화분에 이르기까지 도장에서부터 가면에 이르기까지 각종 관광기념품들이 모두 그 형상을 본땄습니다. 베이징의 여행객 전여사는 도장 하나를 사서 서하문으로 도장에 자기 이름을 새겨줄 것을 조각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전여사의 말입니다.

음향5

<이 도장조형은 특별히 기세가 있고 용맹하며 또 완강해 보입니다. 마치도 수호신같습니다. 저의 이름을 보호해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서하문자는 비록 모르지만 아주 아름답고 보기 좋습니다.>

음악

역사가 유구한 서하문자는 아름답고도 신비하지만 서하왕조의 멸망과 함께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서하왕조가 남겨준 대량의 서하문 역사문헌들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대량의 불경과 자전, 의서 등이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번한합시장중주(番漢合時掌中珠)>라는 도서입니다. 이 책은 818년전에 서하문과 한문 두개 언어로 편찬된 공구서적입니다. 녕하박물관으로 가게 되면 지금도 이 진귀한 고대사전의 조각페이지를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서하학 전문가 사금파(史金波)씨는 늘 이곳에 와서 이 책을 일독합니다. 사금파씨의 말입니다.

음향6

<이처럼 두가지 언어로 된 어휘집은 아마도 중국 역사상 첫번째일 것입니다. 당시 서하인들이 이 책을 이용해 다른 민족의 문화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한족들도 이 책으로 서하어를 배웠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는 이 책으로 서하어를 해독하고 있습니다.>

음악

가장 일찍한 이중 언어 해석사전 <번한합시장중주>외에도 세계상으로 가장 일찍한 나무활자인쇄품인 서하문 불경 <길상편지구와 본속(吉祥遍至口와 本續)>도 박물관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옅은 황색에 서하문을 가득 인쇄한 이 두장의 엷은 종이는 중국 국경을 영원히 벗어나서는 안되는 진귀한 문화재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의 발견은 중국 나아가서 세계의 인쇄역사를 다시 썻으며 또 중국이 활자인쇄술의 발명국이라는 점을 유력하게 증명해주었습니다.

음악

이밖에도 박물관에는 아주 많은 국보급의 문화재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예하면 머리가 1.2미터이고 무게가 188킬로그램에 가는 동으로 만든 서하소(牛)가 있습니다. 사지를 굽히고 업드려 있는 이 건장한 소는 박물관의 보물입니다. 이 동소는 외지전시가 있을 때마다 중국철도부의 전용열차로 호송되며 외국전시때 그의 보험액은 무려 1억원에 달합니다. 전시청에 있는 이 동소와 그 옆에 있는 큰 석마(石馬)는 서하왕조의 청동주조와 돌조각공예의 높은 수준을 진실하게 반영해 주고 있으며 서하인들의 옛 생활상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하문물 고고연구소의 두옥빙(杜玉氷) 부 소장의 말입니다.

음향7

<이들은 사실상 고대 서하인들의 생활모습을 재현해주고 있습니다. 소와 말은 농업과 목축업을 반반으로 해왔던 소수민족의 경제형식을 체현해주고 있습니다. 즉 나가서는 목축생활을 하고 들어오면 농경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음악

서하왕릉과 녕하박물관의 진귀한 소장품들외에도 은천시에는 서하석굴, 사찰, 비석탑, 돌조각 등과 같은 유물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런 문화재들은 서하 고대왕조의 한때 휘황함을 어렴풋이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중후한 서하역사문화는 전문학자들의 연구과제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신비의 땅위에 사람들의 생활 일부분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또 얼마만한 비밀이 이 땅에서 밝혀질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럼 오늘 여행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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