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소설본상 수상작 (2000년)
또 하나의 나
나는 가끔 《또 하나의 나》를 들여다 봅니다. 《또 하나의 나》는 팔자가 한껏 늘어진 놈입니다. 이놈은 어항의 맑은 물 가운데 비죽이 솟아오른 조그마한 섬우에 웅크리고 앉아 물속에서 노닐고 있는 열대어를 멀거니 들여다 보면서 나처럼 그 어떤 명상을 떠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곁에는 새파란 껍대기를 등에 인 애기손만큼한 자라가 그 뭣과 근사하게 생겼다는 대가리를 자랑차게 빼들고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고 있습니다.
자라는 안해가 아침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사다가 넣은것입니다.
《여보, 자라는 왜 사왔소?》
《당신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동무하라고.》
안해는 어항안에 있는 옛날 동전잎만큼한 풀개구리가 나 같다고 합니다.
… 그녀는 무릎우에 뛰여오른 파란 풀개구리를 손바닥우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날은 무척이나 더운 날이였습니다. 한낮의 땡볕은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동네집 개들의 혀를 한발이나 뽑아냈습니다. 그녀는 두발을 논도랑물에 잠그고 앉은채 손바닥우에 놓인 풀개구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곁에 앉은 나에게 엉뚱한 소리를 내뱉았습니다.
《 야, 이게 너 같다.》
그 땐 우린 서로 반말을 썼습니다.
《왜?》
《우리 집체호에 올 때 준 너의 첫 인상이 바로 이렇게 파랬다. 파란바지에 파란 웃옷, 거기다가 모자까지 파란모자를 쓰고. 그 땐 네 얼굴도 파리하다 못해 파란색이 돌더라.》
《그 땐 국방색과 파란색이 류행이였으니까.》
《같은 옷을 입어도 너는 남보다 더 파랗게 보이더구나. 얼굴이 하얘선지.》
우리 둘은 한동안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깼습니다.
《야, 이 개구리가 암만 봐도 너 같다. 이것봐라. 시골을 떠나기 싫어하는 너처럼 이 손바닥에 보금자린가 하고 뛰여 달아날 궁리마저 안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풀개구리 궁둥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다칩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풀개구리는 까딱 움직일념을 하지 않습니다. 한낮 더위에 질렸으면 시원한 도랑물에라도 뛰어 들련만…
《난들 시내로 가고 싶지 않아서 안가는줄 아니. 남들처럼 그런 운이 없어 그렇지.》
다른 애들은 추천받아 대학가고 공장에 들어가고 그런 행운이 차려지지 않은 애들은 하다못해 가짜 병 진단을 떼고 시내로 들어갔지만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세였습니다.
《정 방법이 없으면 그 누구처럼 간질병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앞에서 거품물고 자주 넘어져보렴. 호호호…》
《야, 너나 한 번 그래봐라. 꼴 좋겠다. 평생 시집가긴 다 틀렸지.》
《시집 못가면 이렇게 풀개구리랑 동무하며 같이 살면 되지.》
그 때 그녀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였지만 그녀가 날 풀개구리같다고 한 이상 나로서는 그 말을 거저 흘려보낼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 둘은 짬만 나면 풀개구리를 잡아서 가지고 놀았습니다. 풀개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을 풀개구리 궁둥이쪽에 바싹 가져다대고 입으로 딱! 하고 소리를 내면 풀개구리가 손바닥에서 폴짝 뛰여나갑니다. 우린 누구의 개구리가 더 멀리 뛰여나가는가에 따라 누가 먼저 시골을 떠나게 되는가를 내기했는데 그 날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사람, 당연하게 풀개구리가 더 멀리 뛰여나간 풀개구리 임자가 시골을 떠나간다는 뜻에서 리별의 파티를 마련합니다. 그 때 유일하게 팔리고 있던 《손가락과자》를 한근을 사면 가상적인 리별파티는 시작됩니다. 그 당시 술이 귀해서 맹물로 술을 대신합니다.
창고처럼 휑뎅그렁한 집체호에서 둘만 남은 우리는 맹물에 《손가락과자》를 먹으면서 시골을 벗어나는 사람의 희열과 계속 시골에 남아있게 되는 사람의 비애를 맛봅니다. 비록 가상적인 분위기에 제멋에 놀고 있지만 그런대로 희열과 비애를 뒤섞느라면 언젠가는 시골을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가 그것도 막연한 기대지만 마음에 위안이 돼줍니다.
솔직한 토로지만 그 때 그녀의 모습 - 손바닥우에 놓인 풀개구리 궁둥이에 입을 바싹 가져다대고 딱! 하고 소리내는 그 모습이 얼마나 황홀한 모습이였던지 지금도 적당하게 표현할 말을 찾을수 없습니다. 사실 그녀는 밉지도 곱지도 않은 얼굴형이지만 누구말마따나 산속에서 녀자를 보면 다 예뻐보이는격이여선지 아니면 내 눈이 눈이 아니고 쯤이여서인지…
나의 안해가 된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닙니다. 어항안의 풀개구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도 그 때 시각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외로운 섬에 웅크리고 앉아 눈만 데룩데룩 굴리고 있자니 오죽 외롭겠어요.》
안해의 말속에 가시가 들어 있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정면으로 맞설 엄두를 못냅니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러합니다.
《그런데 이봐. 하필이면 왜 파란 자라를 사왔어?》
그래도 사내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반말을 내뱉을 용기만은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거무죽죽한것보다 파란색이 곱지 않아요?》
《아무색이든 자라는 기분 나빠.》
《왜요?》
《자라는 말이야. 한족들의 욕말에는 제 계집 남에게 떼운 얼간이 사내를 뜻한다니까. 더군다나 파란색 자라라 하면 한족들은 〈푸른 모자를 쓴 사내〉를 떠올리기 십상이지.》
《푸른 모자를 쓴 사내? 건 무슨 뜻이죠?》
《역시 제 계집 하나 건사못하는 바보를 일컫는 말이지.》
《그런데 이 자라를 녀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잘 사가던데요.》
《그건 말이야, 그런 사내꼴이 되지 말자고 미리 징계하는 뜻으로 사갈지도 모르지. 어쨌든 자라는 기분 나쁜 련상만 준다니까.》
《당신 분석대로 그런 뜻에서 남자들이 푸른 자라를 사간다고 하면 제가 이 자라를 사오길 잘했네요.》
《뭐?》
안해는 말속에 숨긴 가시를 약간 내비칩니다. 그 가시가 퍼렇게 독을 쓰며 그 형체를 완연하게 들어내기전에 나는 놀란 자라목처럼 움츠러들고 맙니다.
한해전만해도 나는 안해가 이런식으로 말속에 가시를 내비치기만 하면 지붕이 낮다하고 길길이 뛰였습니다.
《어따대고 하는 말버릇이야? 내가 요즘 집에서 잠간 쉬고 있는 것이 그렇게 원쑤같아 보여? 돼먹지못한 녀편네 허벅지 긁고 바가지 긁을줄밖에 모른다더니 …》
이런식으로 나오면 안해는 사흘이고 나흘이고 입에 자물쇠를 겁니다. 그러던 안해가 이제 와서는 박박 악을 씁니다.
《당신 지금 집에서 잠간 쉬고 있어요 아니면 곰처럼 동면하고 있어요? 동면이라도 했으면 잠에서 깨여날 봄철이나 있잖겠어요. 허구헌날 저 개구리처럼 웅크리고 앉아 당신 무슨 궁리를 하고 있어요? 정 할 일 없으면 거리에 나가서 구두라도 닦으세요. 남자라면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모습이라도 좀 보여달란 말이예요.》
《그만해둬. 나 이래도 언젠가는 솟는다니까 솟아.》
《당신에겐 지금 솟을 하늘이 없어요. 하늘만 쳐다보지말고 제발 땅에서 착실하게 기기라도 하세요.》
그러면 나는 목을 움츠린채 슬며시 자리를 뜹니다. 갈곳은 없지만 나는 집을 나섭니다. 이렇게 고약한 기분으로 문밖에 나오면 꼭 어김없이 떠올리게 되는 노래가락이 귀신경을 긁어댑니다.
가사가 아주 엉망인 노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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