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권력》까지 상실한 나는 더 비참한 인간이 되였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종일 트럼프나 화투장으로 운수패를 널기도 했고 나 같은 신세가 된 사람들이 벌인 트럼프판이나 마작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내가 정리해고자가 되였다는것을 비밀로 부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출근하는 아버지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언젠가 아이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정리해고자란게 직업을 잃은 사람이란 말이죠. 말하자면 실업자란 거죠.》
《거이 비슷하다.》
《오늘 선생님이 부모들중 한분이라도 정리해고자가 된 학생은 손들어보라고 하니까 놀랍게도 거의 반수가 되는 애들이 손을 들지 않겠습니까. 기분없이 손을 드는 애들을 보니 난 그래도 열심히 직장 나가는 부모를 두어 행운이다는 생각이 들지않겠어요.》
아이의 이말에 나는 숨이 칵 막혔습니다.
이때 안해가 쐐기를 박았습니다.
《그래서 애들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거얘요. 애들 볼 면목마저 없으면 그 사람 인생 다 끝난거얘요.》
안해의 말쐐기는 내 가슴을 가차없이 헤집고 들어와 박혔습니다. 그날 나는 나 같은 신세가 된 직장의 동료한테 찾아가 술나발을 불면서 기염을 토했습니다.
《나라의 국록을 타먹는것도 모자라서 공장까지 다 말아먹는 놈, 그런 놈이 바로 탐관오리야. 로동자들이 피땀으로 벌어놓은 돈으로 웃놈에게 아첨하고 자기 배를 기껏 불리고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가버리니 죽어나는건 우리뿐이지. 》
《그런 탐관오리는 옛날에도 효시감이야. 탐관오리를 보면 춘향전에 나오는 암행어사 리도령이 변학도 생일날에 쓴 시가 생각난다. 내 한 번 읊어볼가.》
내 동료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읊어내려 갔습니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요는 만성고라
촉루락시에 민루락이요
가성고초에 원성고라〉》
《지금 우리 쓰는 말로 풀어서 읽어라.》
《〈금동이의 향기로운 술은 천사람의 피요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눈물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
《지금의 탐관오리들한테 그 시를 선물하면 좋겠구나.》
《암,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지.》
《금동이의 향기로운 술은 우리들의 피요…》
《자 한잔!》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우리들이 고기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촛불눈물 떨어질 때 우리처자 울고있고…》
짤그랑!
《노래소리 높은 곳에 이 가는 소리 높더라…》
짤그랑 와장창 …
그날 술잔이 박살나고 술상이 뒤집혀졌고 사람은 인사불성이 돼버렸습니다. 술로 하는 화풀이는 그것으로 끝납니다. 술이 깨면 참담한 현실입니다.
나는 종일 집에서 놀다가 아이가 집에 올 시간이 되면 출근차림으로 밖에 나가 발길 가는대로 이곳저곳 돌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길인 듯 집에 들어섭니다. 그러면 아이가 밥곽이 든 내 가방을 받으면서 반깁니다.
《피곤하시죠?》
고중에 다니는 사내애가 녀자애들 못지않게 정나미 나게 놉니다.
《어, 오늘은 좀 피곤하다.》
《어서 발 씻고 어머니 올 때까지 누워서 쉬세요.》
아이는 발씻을 물을 대야에 떠옵니다. 짐짓 피곤한 표정을 꾸미며 두발을 물에 담그면서 나는 아이 얼굴을 외면합니다. 아이를 바라볼 용기가 없습니다. 그 때가 내가 가장 초라해질 때입니다. 사람구실, 부모구실 돈이 시킨다는 말이 있지만 자식앞에서 내 체면유지는 뭐가 시키는지… 초라해질대로 초라해진 내 마음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얘야, 너와 이 애비는 피는 통하지만 앞으로 네 삶만은 이 애비와 같아서는 안돼. 아니야 절대 같을수 없어!
아이가 방학이 되면 나는 출근길에 나서는것처럼 밥곽을 챙겨들고 문을 나섭니다. 창고에서 숨겨두었던 낚시대를 들고 시교근처에 있는 양어장으로 찾아갑니다. 거리상 차비를 팔것도 없고 주변에 버드나무가 둘러서 있어 공원의 호수가같은 분위기를 내는 곳이여서 내가 가기에는 적합한 곳입니다. 시인이나 철학가들이 즐겨 찾는 명상의 공간으로도 안성맞춤한 곳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곳을 자주 찾는 것은 다른 낚시터에 비해 우선 출입료금를 받지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시간이나 보낼 심산으로 양어장을 찾았지만 문제는 낚시를 던지기 바쁘게 고기가 물려 나오는것입니다. 낚은 고기는 시장가격보다 더 비싸게 돈을 물어야 합니다. 낚시꾼들더러 고기를 많이 낚게하기 위해 양어장주인은 고기에게 먹이를 적게 줍니다. 비싼 값으로 고기를 많이 팔아먹자는 양어장주인의 알량한 속셈이 들여다 보입니다. 낚시만 넣으면 고기가 덥석 물려나오는데 그런대로 그냥 고기를 낚아올리면 둬시간이면 몇십마리는 문제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척척 돈을 물고 개선장군이나 된 듯이 가슴을 내밀고 양어장을 떠나지만 난 그럴수 없습니다. 나에겐 매일 고기값을 물어줄 돈도 없거니와 남들처럼 료리용으로나 선물용으로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저 시간만 보내면 됩니다.
그래서 고안해낸것이 《강태공낚시질》입니다. 미끼를 끼지않은 낚시를 물에 던져넣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강태공은 낚시마저 없는 낚시줄만 물에 드리우고 나라의 흥망성쇄를 가늠해 보았다지만 사색마저도 고갈된 내 머리속에는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초침소리만 째깍째깍 울리고 있습니다.
매일 양어장에 죽치고 앉아 고기를 한마리도 낚아 올리지 않으니 하루는 양어장주인이 내곁으로 왔습니다.
《아저씬 무슨 미끼를 쓰길래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못합니까?》
그러면서 양어장주인은 내 낚시를 물에서 건져올립니다.
《어허. 미끼를 떼운걸 몰랐군.》
나는 짐짓 허거픈 웃음을 입가에 물면서 미끼통을 꺼냅니다.
《아저씬 무슨 미끼를 씁니까? 어디 좀 봅시다.》
미끼통에는 바짝 말라붙은 밥알밖에 없습니다.
《이런 미끼를 쓰니 고기가 물리겠습니까.》
《모르고 하는 소리. 큰고기를 낚는덴 밥알이 가장 좋은 미끼지.》
이럴 땐 나는 낚시에 이력이 튼 낚시광인것처럼 나옵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이런걸 미끼로 씁니까. 지금 고기들은 밥알을 먹지않습니다. 더군다나 큰고기를 낚으려면 미끼를 좋은걸로 써야 합니다. 좋기는 수입제가 좋지요.》
달도 외국의 달이 더 둥글어보인다더니 미끼도 수입제가 더 좋을 수밖에 없겠지요. 고기도 인젠 밥알을 먹지않는다니 맥드날도나 쏘세지를 먹겠지요. 그런걸 먹고 자란 고기를 수입제 미끼로 낚아서 맛나게 드시는 사람은 머리나 눈도 양코배기들처럼 노랗거나 파랗게 변해가겠지요. 그런 사람들이 혹시 물에 빠지면 고기들은 수입제가 왔다고 구름같이 몰려오겠지요. 언제 한 번 저 먼바다에 가서 그런 사람들을 낚시미끼로 큰 바다상어를 낚아봤으면 여한이 없을것 같기도 하고…
《시간많은 량반이시네…》
양어장주인이 남기고 간 비꼬는 말이 내가 요행 얻은 상상의 날개를 꺽어버립니다.
《그래 맞다, 나 시간이 많다. 나도 언젠가는 큰고기를 낚을수있을거야. 암 낚고말고.》
비록 광적인 상상에 가깝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상상을 어쩌다 얻은 것으로해서 만족해합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그런 상상을 가질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을 놀랍게 발견합니다.
진짜 큰고기를 낚을 기회가 왔습니다. 그날은 양어장에서 낚시대회가 있었습니다. 《21세기를 대비하는 낚시대회》라고 거창하게 쓴 현수막이 크게 걸리고 숱한 유지인사들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모여들었습니다. 상품도 큼직한 것을 내걸었습니다. 가장 큰고기를 낚은 월척상엔 최신형 컴퓨터 내걸었고 등수에 들지 못한 사람은 고기를 얼마나 낚던간에 무료로 가져갈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강태공낚시》를 물에 던져 넣고 낚시대회를 구경했습니다. 낚시꾼속에는 온 가족을 데리고 온 정부관원들도 있었고 미모의 녀비서와 동행한 사장님들도 있었습니다. 큰 회의가 있을 때마다 심심찮게 텔레비죤 화면에 가끔 얼굴을 내비치는 70고령의 어르신네가 비서를 데리고 나왔는데 낚시하는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그 어르신네는 눈이 어두워서 미끼도 비서가 꿰주고 고기 물린것도 비서가 알려주고 낚시대도 비서가 거들어 들어주는데 비서만 곁에 없다면 손발을 후들후들 떨며 낚시대도 들어올리지 못하는 어르신네의 모습은 사람이 고기를 낚는지 아니면 고기가 사람을 낚는지 도무지 분간이 안갈 진풍경일것입니다.
내가 이리저리 눈을 널고 있는데 깔끔하게 양복차림을 한 50대 초반의 남자가 젊은 아가씨와 함께 나한테로 왔습니다.
《실례가 되겠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낚시대를 좀 봐줄수 없을까요? 전 사업이 바쁜 사람인데 저의 낚시대로 고기를 낚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낚은 고기는 고기회를 뜰 몇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가져도 됩니다.》
청탁도 아주 기분이 나는 청탁입니다. 나는 선선히 그 청탁을 받아들였습니다.
《낚시대도 수입제고 미끼도 수입제입니다. 고기가 잘 물릴것입니다.》
그러곤 사업이 바쁘다는 그 사람은 미모의 아가씨와 함께 버들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푸른 잔디가 깔리고 버들숲이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주는 아늑한 곳에서 미모의 아가씨와 벌이는 사업이 대체 무슨 사업일지 꽤나 궁금합니다. 들을라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산해진미를 먹어도 사업이고 산천경개를 구경해도 사업이고 유흥가에서 놀아나도 사업이라더군요. 나도 한 번 그런 사업가가 되여봤으면 평생 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두꺼비 고니먹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 그만 하시고 고기나 낚아요 풀개구리같은 사람아…
나는 수입제 낚시대에 수입제 미끼로 밥알을 먹지않는다는 고기를 낚아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낚시대회를 위해 고기를 얼마나 굶겼는지 미처 미끼를 갈아댈새가 없습니다. 잠간새 고기구럭에 십여마리 잉어가 들어갔습니다. 더 낚을 재미가 없어 《강태공낚시》나 하려던차 낚시대가 휘청했습니다. 낚시대 끝이 꺽어질 듯이 후러든 것을 봐서는 큰놈입니다. 물밑에서 요동치는 고기를 따라 낚시줄을 당겼다 늦췄다 하면서 좋이 반시간을 허비하니 맥이 진한 고기가 허연 배를 드러내며 물우에 떠올랐습니다.
《저놈은 분명 월척입니다. 이 양어장엔 저만큼한 고기가 없습니다. 형씨는 월척상을 타게 됐습니다.》
나와 안면이 있는 낚시꾼이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월척상이면 최신형 컴퓨터입니다. 그러나 나는 낚시대회 참가자가 아니니 그건 내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월척을 낚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버렸습니다.
숱한 낚시대회 참가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버들숲으로 사업하러 들어갔던 낚시대 임자도 뛰여왔습니다. 낚시대 임자는 월척을 낚아준 나에게 감사의 뜻으로 수입제 낚시대를 주었고 낚은 고기도 다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난 꿩 먹고 알 먹게 되였습니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기 바쁘게 그 자리에서 월척에 대한 경매가 붙었습니다. 최신형 컴퓨터 한대 값이니 적어도 시세로는 만원을 웃돕니다. 낚시대 주인은 자기 회사에 컴퓨터가 있으니 컴퓨터가 수요되는 사람은 돈 5천원만 내고 월척을 사가라고 했습니다. 5천원으로 시작된 경매는 컴퓨터 값과 거의 가까운 9천원까지 치달아 올랐습니다. 나중에 한사람이 만원을 불러 월척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별로 요지경을 보는듯한 환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더 요지경은 그뒤에 있었습니다. 낚시대회 시상식에서 월척상을 받는 사람은 월척을 만원에 사간 사람이 아니라 고기를 낚는지 고기가 사람을 낚는지 분간이 안가게 하던 고령의 그 어르신네였던것입니다. 월척을 고가로 사간 사람이 월척을 그 어르신네가 낚은 것으로 만들었던것입니다. 소웃다 영각할 일입니다. 뒤에서 쉬쉬하는 소리에는 그 사람은 낚시대회를 협찬한 컴퓨터회사 사장이랍니다. 그러니까 어르신네한테 컴퓨터를 그냥 주면 뢰물로 되니까 자연스럽게 낚시대회 상으로 드리면 명분도 서고 쌍방이 다 편안하다는거겠지요. 한마디로 돈이 권력에 아부했다고 할까요, 아니면 돈과 권력 사이에 벌어진 유희라고 할까요. …
하여튼 있는 자들의 세계는 요지경입니다. 월척을 경매에 부친 사람이나 그것을 고가로 사서 진상한 사람이나 또 그것을 자기가 낚은것처럼 뻔뻔스럽게 시상식에 나선 어르신네나 다 권력이던 돈이던 뭐든 있어야 하는 세상에서는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날 저녁 나는 물고기와 선물받은 수입제 낚시대를 시장에 가서 헐값으로 넘기고 받은 돈 3백원으로 아이가 그렇게 사고 싶어했던 영어학습용 록음기를 샀습니다. 그 월척이 내 소유가 되여 상으로 받은 컴퓨터를 아이한테 선물했으면 애비로서의 체면이 얼마나 섰겠습니까. 그런대로 나는 그날 가장 떳떳하게 집에 들어설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난 돈이냐고 안해가 추궁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 돈의 래력을 알면 안해앞에서 내가 또 한번 왜소해 질가바 두려웠던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류행가에 이런 구절이 있는걸로 기억됩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지금의 내 처지가 바로 그렇습니다. 안해를 마주 대하면 우선 나는 못할짓이나 하다 선생한테 들킨 애들처럼 움츠러들면서 눈치만 슬슬 살핍니다. 그러곤 인차 왜소해져가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남자는 젊은 시절에 안해앞에서 내노라고 범처럼 으르렁대다가도 기력이 빠지고 늙어가면 주인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개처럼 안해의 눈치만 슬슬 살핀다는 유머입니다. 기실 이건 유머가 아닙니다. 유머란 그 어떤 명분에 가려진 실제를 살짝 들어낼때 생기는 익살스러운 롱담이나 해학인데 이건 아주 남자들에 대한 가혹한 매도이고 중상입니다. 적나라한 매도와 중상은 유머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개같다는 비유는 쓰고 싶지 않지만 내가 안해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것만은 사실입니다. 안해에게 못할 짓을 해서 그러는것도 아니고 또 안해의 가슴에 못을 박을 죄되는 일을 저질러서 그러는것도 아닙니다.
내가 안해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은 내가 안해의 존재를 그것도 나의 존재보다 더 위엄이 있는 그런 존재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내가 언제부터 어떻게 되여 안해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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