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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또 하나의 나
2009-03-04 16: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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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로 갈까요 홍도한테 갈까요 아니면 북망산으로 갈까요…》

언젠가 한국에 가서 돈깨나 벌어온 사촌동생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내뱉던 노랩니다. 그날 그 녀석은 그 녀석의 말마따나 서울의 사창가인 《588》과 거의 근사하다는 곳에서 폼 한 번 잡았더랬습니다.

《야, 양주 한병 더 가져와.》

《어느 양주로 드릴까요?》

《거 있지. 〈섹스 오케!〉》

그 녀석은 XO양주를 〈섹스 오케〉라고 했습니다.

《녀자는 반죽이 잘돼야 나중에 복에 겨운 소리가 거창하게 나오는 법이예요》

독한 술이 창자를 비틀어 짤때까지 곁에 붙어앉은 계집을 아주 주물럭반죽을 만들어놓고는 걸레짝처럼 늘어질 밀실로 자리를 옮기는게 바로 그 녀석의 주벽입니다.

《형님도 오늘 밤 멋진 사내 한 번 돼 보소. 그럼 이따 만나요.》

그녀석이 계집과 함께 밀실에 들어간뒤 나는 내곁에 앉은 계집애가 따라주는 술만 훌훌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이자 갓 스믈이 됐을가말가한 가녀린 계집애가 새침한 표정으로 술을 따라주다가 나중에 한다는 말이 기막힙니다.

《사장님은 녀자 좋아 안하세요?》

이때면 나는 사장이 됩니다.

《뭐 녀자?》

《나 안 이뻐요?》

술기운이 오른 내눈엔 계집애의 얼굴이 륜곽밖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래봬도 전 여기선 잘 나가는데요.》

잘 나가는 년인데 왜 날름 잡숫지 않고 있나 하는건데 내 지금 기분이 얼마나 엉망이라고, 그러나 말만은 여유작작하게 나옵니다.

《나 그런 짓에 명 재촉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곤 빈 술잔을 내밉니다.

《아이참 긴긴 밤 술시중이나 들다 말겠네. 인젠 그만 하세요. 기실 명 채촉하는건 술이얘요.》

《뭐야?》

빈 술잔이 술상우에 튀여오릅니다.

《술주는 세상에 술마시지 않고 뭘하라는거야? 어서 붓기나 해!》

계집애는 하는수없이 술을 따릅니다. 그러면 나도 내 체신을 찾습니다.

《너 한테 큰소리해서 안됐다. 자 너도 한잔해라. 너한테 솔직히 말해주는데 난 말이다 술마시고 그 짓은 둘째치고 니나노장단도 못치는 놈이야. 그건 그렇고 나 지금 기분이 말이 아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오늘 밤 취토록 마시자요.》

계집애는 절로 맥주컵에 양주를 가득 채우더니 건배를 해왔습니다.

《방금 사장님은 술주는 세상이니 술 마시자고 했죠. 좋아요. 술 마시지 않고는 못사는 세상, 자, 마이자요. 사장님도 기분 푸세요.》

쨍그랑! 오케! 《섹스오케》 또 한병!

《인생은 나그네 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것…》

《꽃순이를 아시나요 어여쁜 꽃순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눈물을 보였나요 내가 울고 말았나요…》

《학창에서 공부하고 농촌에 돌아와 부지런히 일하여 첫수확을 거두었네…》

《그대의 옷자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려야 했나요…》

술 한잔 노래 한곡, 네 술 한잔에 내 술 한잔, 가고 오는 술에 주고받는 노래, 이렇게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계집애는 주로 사랑의 리별이라든가 그리움이라던가 아픔이라던가 하는 노래만 주어 부르면서 눈물을 찔끔거렸고 나는 나대로 기억에 떠오르는 노래면 죄다 뽑아버렸습니다.

《술 마이니 기분 고약하네요. 나 이래도 슬픈 녀자얘요 아저씨…》

계집애가 혀가 꼬부니 난 사장님에서 아저씨로 내려앉았습니다.

《나 역시 구질구질하게 살아온 놈이야…》

이렇게 신세타령이 시작되였습니다.

《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엔 내 신세 조져놓고는 훌쩍 밀항선을 탔어요…》

들어보나 마나 역시 구질구질한 사랑과 배신에 관한 넋두립니다. 그런 넋두린 보통 그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소연이 그 넋두리의 말허리를 썩둑 자릅니다.

《너 내 신상서 한 번 보겠냐?》

《뭐요. 신상서?》

《그것도 몰라? 너 중학교나 나왔냐?》

《중퇴하고 말았죠.》

《그럼 글은 뜯어 볼 수 있겠구나.》

나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자그마한 종이 한 장 꺼내 주었습니다.

《자 이걸 읽어봐.》

계집애는 그걸 받아 혀꼬부라진 소리로 읽어내려갑니다.

《 〈이력서:

동년시절 영향실조에 걸린 구루병환자

소년시절 반란에는 무조건 도리가 있다던 홍위병

청년시절 광활한 천지에서 지구를 다스리던 지식청년

중년시절 부모처자를 가진 정리해고자〉아니 이게 뭐예요?》

《내 력사이고 명함이다.》

재취직하러 이곳저곳 다니자니 명함이나 리력서같은 것이 필요해서 글깨나 쓴다는 동창생한테 부탁해서 만든 내 이력섭니다. 별로 적어넣을것이 없는 생이니만큼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다는게 동창생의 주장이였습니다. 사실 적어 넣을것이 없는 것이 내 리력입니다. 한창 먹고 자랄 나이에 3년 자연재해를 만나 영양실조로 가슴이 새가슴처럼 쏙 튀여나온 구루병체질이 됐고 공부에 열중해야 할 소년시절에는 문화대혁명이 터져 《홍위병완장》을 낀 손에 몽둥이나 들고 다녔는가 하면 아침 아홉시 태양과도 같다는 청년시절에는 손에 쥔 호미로 밭이랑을 허비면서도 지구를 다스린다고 허풍이나 떨었습니다. 그 때 말을 빌면 청년시절은 《밭이랑을 타고 세계를 내다보던》 시절입니다. 운수가 사나웠던지 남들처럼 대학이나 군대에는 못가고 겨우 농촌을 벗어나 부모대신 뒤늦게야 공장에 들어가 시키는 일이나 해오면서 두루두루 세월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중년시절에 들어섰습니다. 별다른 의욕이 없이 정착된 생활을 누리려고 하니 정리해고바람이 터져 한달에 기본생활비만 타는 실직자가 돼버렸습니다. 생각하면 구질구질하기 짝이없는 삶입니다.

《이건 보고도 모를 글이구만요.》

계집애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맞아, 너들 세대야 돈바람이 터진 세상에 나서 돈맛만 알고 커왔으니까 보고도 모를 글이지. 말해봤댔자 소귀에 경 읽는거고. 술이나 먹자.》

나는 실없는 소리를 했다싶어 제풀에 멋적어져 술잔만 홀짝이면서 그녀석이 나오기만 기다립니다. 생각같아서는 집에 가서 노그라지고 싶지만 술값, 팁값 결산 할 놈이 나와주지 않으면 인질이 된 비참한 기분으로 죽치고 앉아 기다려야 하는 신세입니다. 계집애는 하품을 짝짝 해대며 시계만 들여다 봅니다. 잠이 무겁게 내 눈두덩에도 실립니다.

《어허. 아가씨 재간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우리 형님이 아주 녹초가 됐군그래.》

잠결에 아스라이 들리는 그 녀석의 목소립니다.

《제풀에 녹초가 된거죠. 전 지금까지 독수공방하는 신세예요. 이 아저씨 혹시 고자가 아니예요?》

이가 부득부득 갈릴 그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파고들어도 두 눈이 떠지질 않습니다.

(개쌍년…)

《문제가 심각한데. 그럼 이제라도 내가 형님대신 아가씨 신세 고쳐줄가?》

(개수작말아!)

《그럴 재간있어요?》

(정말 개같이 노네)

《하 이거 오늘 진짜 2차 하게 됐네. 1차에 기절직전까지 몰아갔으니 2차에는 초죽음을 만들어야겠군 하하하…》

(개새끼, 물개같은 새끼…)

그녀석이 계집애를 데리고 나가자 나는 채 못한 욕을 입가에 문채로 굳잠에 빠져버렸습니다.

어쩌다 술이 생겨 폭음만 하면 나는 하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합니다. 화장실 세면대에 얼굴을 처박고 눈물콧물 찔끔찔끔 짜면서 창자를 올리훑고 내리훑으며 창자를 청소합니다. 창자청소를 끝내고 얼굴을 들 때면 딩딩 부은 눈두덩이가 눈동자 절반을 덮어버린 핏기어린 두 눈이 나를 멍청한 눈빛으로 지켜봅니다. 눈을 비비고 대방을 찬찬히 뜯어보면 참으로 한심한 얼굴을 가진 녀석입니다.

손이 간적이 없는듯한 머리는 갈대처럼 선건 섰고 강풍이 쓸고 간 논밭의 벼처럼 이리저리 쓸어진건 쓸어진대로 있습니다. 부석부석하고 탄력을 잃은 얼굴은 땀구멍이 늘어날대로 늘어나 알곰알곰 얽은 곰보가 되기 직전입니다. 더 가관은 이발입니다. 담배연기에 얼마나 그슬렸는지 누렇다 못해 벌그스름한 색갈까지 내비칩니다. 얼굴을 얼기설기 지나간 주름선은 한창 주름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라잖으면 만고풍상을 겪어온 그런 얼굴로 변해버릴 것 같은 얼굴이 잔뜩 찌그러듭니다.

이렇게 나는 한참이나 나를 뜯어봅니다. 그럴 때면 덧없는 세월의 무정함보다 이름못할 인생의 허무가 찡하니 온몸을 엄습합니다. 누군가 지금의 중년시절은 자사자리한 청춘시절이나 새롭게 발기가 가능한 로년시절에 비해 가장 탐욕스런 시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중년으로서의 탐욕의 빛이 번뜩이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모든 것을 체념한듯한 멍청한 얼굴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얼마라도 자기를 추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내 생을 멋지게 설계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자기를 추잡하게 만들려는 생각따윈 전혀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그저 운명에 이몸을 맡겼을 따름입니다.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이름짓기보다 살아가는 그 생리에 따르느라고 헐떡거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의 얼굴은 아주 추잡하게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중년답지 않은 초로의 로인상입니다. 그것도 신수 훤한 로인상이 아닌 찌든 상입니다.

《이 아저씨 혹시 고자 아니얘요?》

삭막한 기분에 어쩌다 떠올리게 되는것이 뭇사내들의 하수도가 돼버린 걸레같은 계집애가 냉갈령하게 악매하던 말입니다. 비위가 아주 뒤집혀져 버립니다.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마음도 구겨진는것 같더니 그것도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것도 사실입니다. 나중엔 시체말대로 고개숙인 남자가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할일없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던 초반에는 종일 먹고 자고 자고 일어나서는 또 먹고 이렇게 《돼지료법》을 했더니 그 놈만은 왕성하게 고개를 추켜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김치를 파느라고 파김치가 되여 돌아온 안해에게 나는 밤마다 열심히 왕성한 힘을 과시했습니다. 사내는 녀자에게 있어서는 《밤의 권력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밤마다 안해앞에서《밤의 권력자》로 군림합니다. 첨엔 안해는 놀랍다는 기색으로 받아들이더니 날이 감에 따라 점차 시들해 지고 나중에 가서는 아예 《노!》를 불렀습니다.

《당신 지금와서 열심히 하는건 그짓밖에 없어요.》

안해는 부부가 합환하는 신성한 사랑행위를 인제는 그 짓이라고 꺼리낌없이 매도합니다.

《그렇게 매도하면 벌받아.》

《아예 석녀가 되게 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싫어?》

《진저리날 지경이예요.》

《당신 갱년기 오는게 아니오?》

안해는 발딱 일어나더니 이불을 걷어안고 아이방으로 건너갔습니다. 그후론 다시는 내곁에 오지 않았습니다. 각방쓰고 사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밤의 권력자》는 그 권력을 상실했습니다. 아무 재간도 없는 권력자가 일단 그 권력을 상실하면 뭐가 남는지 아십니까?

《똥무지 큰것밖에 없어.》

이말은 정부기관에서 사무원으로 있던 중학교 동창생이 한 말입니다. 그 친구가 일보는 부서에는 아무 재간도 없이 다만 상급에 대한 아첨으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책임자가 있었는데 정부기구 인원간소화 여론조사에는 재간없는 그 책임자가 당연히 조정대상으로 점찍혀지고 내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할 적임자로 평판이 났답니다. 그런데 조정대상 이름을 공포할 때 어이없게도 내 친구가 찍혔답니다. 역시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막강합니다.

내 친구는 부서에서 연 송별파티에서 술을 권하는 그 책임자한테 조언 한마디 했답니다. 그 조언이 바로 똥무지 조언입니다.

《재간없는 당신이 일단 손에 쥔 권력만 내놓으면 남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뭔데?》

《당신이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으니 똥무지 더 큰것밖에 없습니다.》

그날 나는 친구한테서 이말을 들으면서 쾌감까지 느꼈습니다. 기업소를 말아먹고 로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정리해고자로 추락시키고는 유유히 공문가방을 챙겨들고 다른 기업소의 책임자로 전근되여 간 우리 기업소 책임자도 언젠가는 큰 똥무지밖에 남지않은 페인으로 될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한바탕 화풀이를 한 기분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친구의 말이 별로 나까지 념두에 두고 한 말같이 느껴지는걸 어쩔수 없습니다. 권력도 별별 권력이 다 있듯이 내가 가지고 있던 《밤의 권력》도 권력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원초적인 힘, 본능의 힘, 생명의 힘, 이런 시각에서는 《밤의 권력》은 그 어느 권력에 비해 막강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 막강한 권력을 나는 잃었습니다.

어항안의 《또 하나의 나》는 요즈음에 와서는 아예 두눈을 감아버린채 하루 종일 웅크린 그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예전엔 그래도 툭 튀여나온 눈을 디룩디룩 굴리면서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다가도 물속에 뛰여들어 열대어들과 장난도 치고 자라등에 폴깡 뛰여올라 짓궂은 장난질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고독을 즐기는 그런 모습입니다. 사실 녀석은 어디 갈 곳도 없고 또 갈래야 갈수 없는 놈입니다. 그 면에선 내 신세와 꼭 같습니다. 자라도 잘 내휘두르던 그 뭣과 같게 생겼다는 대가리를 깊숙히 껍질안으로 잔뜩 움츠러리고는 조용히 엎드려 있습니다. 그놈도 아마 점점 내 꼴이 되여가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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