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잃을 상(喪sàng), 마음 심(心xīn), 병들 병(病bìng), 미칠 광(狂kuáng).
◎뜻풀이: ①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다. ②미친듯이 잔인하게 파괴 행위를 하다.
◎출전: 송(宋) 사채백(謝采伯)『밀재필기(密齎筆記)』
◎유래: 진회(秦檜)는 남송(南宋) 때의 간신이다. 북송(北宋) 말년에 진회는 어사중승(御史中丞)을 맡았고 송휘종(宋徽宗), 송흠종(宋欽宗)이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때 수행해 금나라로 갔다가 금태종(金太宗)의 동생인 달뢰(達賴)의 측근으로 되었다. 3년 후 진회가 송나라로 파견되었는데 그는 감시하는 병사들을 죽이고 배를 빼앗아 탈출했다고 속이고는 남송에서 금나라의 첩자로 있었다. 암둔한 송고종(宋高宗)이 진회를 총애하니 진회는 소흥(紹興) 연간에 두번이나 재상(宰相)으로 있으면서 19년간 조정의 대권을 장악했다. 이 기간 진회는 투항노선을 주장하였고 금나라에 신하로 칭하고 공물을 바치는 정책을 실행하였다. 진회는 항금(抗金)영웅 악비(岳飛)에게도 있지도 않은 죄목을 씌워 죽였다.
진회가 재상으로 있는 기간 각지에서 조정에 보낸 진상품은 먼저 진회의 집을 거쳐야 했고 고르고 나머지 물건만 궁에 보내졌다. 어느날 진회의 아내 왕씨(王氏)가 궁의 연회에 초청되었다. 연회에서 황태후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세상이 태평치 못하니 궁에 들어오는 자어(子魚)도 크기가 줄어들었구려. 예전에 진상된 자어는 컸는데 말이요.”
왕씨가 멍청하게 말했다. “소첩의 집에 있는 자어가 모두 크오니 태후께 백마리를 올리지요.”
왕씨가 집에 돌아와 이 일을 진회에게 말하니 진회는 큰 일을 저질렀다고 아내를 책망했다. 어찌 궁에 부족한 물건이 오히려 신하의 집에 넘쳐나는 도리가 있단 말인가? 만약 태후께서 나 진회가 진상품을 착복했다는 것을 아시면 이는 목이 몇번 날아나도 씻지 못할 죄가 아닌가? 진회는 밤을 새면서 궁리한 끝에 태후를 속일수 있는 꾀를 생각해냈다.
이튿날 그는 사람을 시켜 황태후에게 백여마리에 달하는 생선을 보냈는데 자어가 아니라 청어(靑魚)였다. 태후가 물고기를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그렇지. 진대감네 집에 황궁의 것보다 더 큰 자어가 있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그 여인이 청어를 자어로 보았던게지.”
자어는 매우 희귀한 담수어이다. 청어는 자어와 그 모양이 비슷하나 훨씬 큰 생선이었다. 진회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 태후를 속였던 것이다.
소흥 26년에 진회가 병이 중해지니 정사(政事) 동덕원(董德元)과 첨사추밀원사(簽史樞密院事) 탕사퇴(湯思退)를 침실에 불러 후사를 부탁하고는 황금 천냥씩 내주었다.
음험하고 교활한 진회가 황금을 내주니 측근들도 그 뜻을 알수가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관직을 잃는 것은 둘째 치고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일이었다. 동덕원은 내가 금을 받지 않으면 진회가 부탁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되고 진회에게 충성하지 않는 꼴이 된다고 생각해 울며 겨자먹기로 받았다. 탕사퇴는 금을 받게 되면 진회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라 생각해 금을 사양했다. 이들 두 사람은 진회의 보복이 두려워 이런 행동을 했으며 이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송고종은 탕사퇴가 진회가 주는 황금을 받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진회와 한무리가 아니라 생각하여 탕사퇴를 더욱 신뢰했으며 좌복야(左僕射)로 승진시켰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나라에 충성하는 대신들이 있었다. 어느 한번은 금나라의 사신이 송나라에 왔는데 당시 진회는 사신단을 비서성관서(秘書省官署)에 들도록 했다. 범여규(范如圭)라는 관원이 이를 극구 반대하며 말했다. “비서성은 비밀을 지켜야 하는 중요한 곳인데 어찌 적국의 사신을 들게 한단 말이요?”
범여규는 자신의 힘으로는 진회를 이길수 없음을 알고 다른 대신들을 연락해 연명으로 황제에게 상소를 함으로써 진회의 매국적인 행위에 항의하려 했다.
그러나 상소문을 다 써놓고 범여규가 사전에 동의했던 대신들의 서명을 받으려 하자 이들은 진회의 보복이 두려워 누구도 서명을 하지 않았다. 범여규가 하는수 없이 진회에게 편지를 썼다. “공이 이성을 잃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을 한단 말이요?”(상심병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