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7 16:45:12 출처:cri
편집:金东光

정문입설(程門立雪)


◎글자풀이: 한도 정(程 chéng), 문 문(門 mén), 설 입(立 lì), 눈 설(雪 xuě).

◎뜻풀이: 스승을 공경하여 가르침을 받다(기다리다). 

◎출전: 원나라(元) 탈탈(脫脫) 등 『송사•양시전(宋史•楊時傳)』

◎유래: 정호(程顥), 정이(程颐) 형제는 북송(北宋) 때의 유명한 철학가, 교육가이다. 이들의 문하에 가르침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양시(楊時)와 유초(遊酢)도 있었다. 

   양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고 무슨 일이든 끝까지 묻는 성격이었다. 그는 반응이 빠르고 말주변이 좋았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경사(經史)연구에 집중했다. 유초는 양시의 친한 벗으로 두 사람은 뜻이 같아 늘 함께 문제를 토론하며 날을 밝히군 했다. 

   양시는 일반 문인들과는 달라 진사(進士)에 급제했으나 명리를 쫓지 않았으며 몇번이나 벼슬길에 나설 기회를 포기했다. 이는 이학(理學)연구에 집중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려는 그의 뜻이 굳건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정호는 하남(河南) 영창(潁昌)에 거주하고 있었다. 양시는 늘 정호를 찾아 가르침을 청하면서 스승의 예로 모셨으며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양시가 마흔살이 되던 해에 송철종(宋哲宗)이 정호를 종정사승(宗正司丞)으로 임명했다. 허나 양시가 스승을 위해 송별연을 차리기도 전에 정호는 병으로 사망했다. 양시는 비통을 금할수 없었고 이어 스승의 이론을 크게 발전시키리라 결심했다. 이학의 정수를 장악하기 위해 양시는 낙양(洛陽)에 있는 정이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려 했다. 이를 알게 된 유초도 양시와 함께 떠났다. 

   낙양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워졌고 두 사람은 객사를 찾아 짐을 풀었다. 저녁에 양시와 유초는 가르침을 청할 문제들을 정리하느라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두 사람은 의관을 정제하고 정이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큰 바람이 불어쳤고 이어 눈발이 날렸다. 정이의 집에 도착하니 마침 정이는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창가밖에서 공손하게 서서 정이가 깨기를 기다렸다. 

이때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눈도 더 크게 내렸다. 두 사람은 한기가 뼈속까지 스며 들었으나 정이의 휴식을 방애할까봐 발도 구르지 않았다. 그 공손한 태도는 유비가 삼고초려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감동케 했다. 

   큰눈이 두 사람의 발등을 덮을 때 쯤 정이가 깨어났다. 그는 창가에서 눈사람으로 변한 양시와 유초를 보고는 크게 감동을 받았고 두 사람을 집에 들어오게 했다. 이때부터 정이는 자신의 평생의 학문을 이 두 제자에게 전수했다. 양시와 유초는 더욱 부지런히 학문에 정진했으며 연구를 거듭하여 끝내는 이학의 대가로 되었다. 

   양시가 죽은 후 원나라의 문인 사응방(謝應芳)은 이런 시를 남겼다. 

   “탁피문정공(卓彼文靖公), 조립정문설(早立程門雪).”

   후에 사람들은 정문입설이라는 성어로 스승을 지극히 존경하고 진심으로 배움을 청하는 뜻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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