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8 10:56:23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24] 황성: 산서의 첫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황성촌)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스물 번째는 산서(山西, Shanxi) 동네 황성(皇城, Huangcheng)촌이다깊고 아늑한 황성의 뜰에 서서 빗바람에 퇴색한 푸른 벽돌과 창틀에 새긴 글자를 만지고 혹은 은은한 차의 향기속에서 유유한 음악을 들으면 마치 300여년전의 어제로 돌아간 속에 심취하게 된다.

기슭의 물가에 위치한 황성촌은 234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지만 자랑스러운 역사흔적으로 인해 산서의 동네로 공인된다. 웅장한 성벽과 관가의 건물, 일반 사택들이 즐비한 황성은 고대 중국의 축소판이다.

건물이 첩첩하고 뜰이 겹겹한 황성상부(皇城相府) ()나라 강희(康熙)제의 스승이었던 진정경(陳庭敬) 모친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진정경은 황제의 스승이면서 그때 당시의 재상이고 <강희자전(康熙字典)> 비롯한 고전의 심열관이기도 했다.

(사진설명: 웅장한 황성상부의 전경)

전하는데 의하면 진정경이 베이징에서 벼슬을 그의 모친이 베이징을 가보는 것이 꿈이었으나 연로한 몸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진정경은 고향에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 유사한 저택을 지어 이름도 황성상부라 하면서 모친에게 효도했다고 한다. 진정경의 호가 오정(午亭)임으로 황성상부는 일명 오정산촌(午亭山村)으로도 불리운다.

570여년전의 ()나라때 공사를 시작해 ()나라 강희제때에 이르러 오늘의 규모를 형성한 황성상부는 자금성을 따서 건물을 내성(內城) 외성(外城)으로 분류했으며 1700m길이의 성에 성문도 아홉개를 쌓았고 크고 작은 뜰은 19개에 달한다.

(사진설명: 황성상부의 건물들)

어서루(御書樓) 찬란한 금빛으로 빛을 뿌리고 하산루(河山樓) 웅장하고 험준하며 중도장(中道庄) 아아하게 장관을 이루고 두축거(斗築居) 뜰과 뜰이 교묘하게 연결되며 장병동(藏兵洞) 기이하고 남서원(南書院) 아늑하며 서화원(西花園) 운치를 자랑한다.

관료저택과 문인의 생가, 지방민가 특색을 몸에 모은 황성상부는 전문가들로부터 중국 북방 최고의 선비가문의 거대한 저택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황성상부의 외성은 중도장을 말한다. 외성의 성벽과 점한당(点翰堂), 소저원(小姐院), 한림원(翰林院), 서원(書院), 화원과 공덕패방(功德牌坊) 등으로 구성된 중도장은 웅장한 규모를 특색으로 하는 청나라 보루식 건물군락이다.

(사진설명: 황성상부의 건물들)

황각루(皇閣樓)라고도 하는 어서루는 중도장의 성문앞에 위치해 있다. 조각이 화려한 대들보와 그림으로 단장한 기둥, 날아갈듯한 처마, 금빛과 붉은 색의 건물에는 강희황제가 친필로 <오정산촌>이라는 간판이 위엄을 나타낸다.

공덕패방은 황성상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패방이다. 상부에 들어서면 먼저 기둥 개에 삼층으로 커다란 패방이 맞이해준다. 석패방 전체는 화려한 조각으로 단장했는데 하단에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조각되고 상단에는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다.

패방의 뒤에는 기둥 개에 일층으로 작은 패방들이 줄지어 있다. 마찬가지로 옹근 돌을 깎아서 세운 작은 패방들에는 명나라때부터 청나라때까지 진씨네 가문이 받은 벼슬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설명: 황성상부의 건물들)

외성에서 가장 주요한 건물은 대학사제(大學士第)라는 이름을 가진 진정경의 저택이다. 강희황제가 친필로 <점한당> 간판이 걸려져 있는 곳의 건물은 지방특색이 다분한 2 건물이다.

건물에서는 특히 조각이 일품이다. 처마와 창틀, 난간, 조벽에 이르기까지 각이한 조각물이 정교한 기법을 자랑하면서 웅장함과 화려함, 우아함을 몸에 안고 있다.

황성상부의 내성은 진씨가문이 명나라때 지은 보루식 건물인 두축거이다. 진씨네의 생활장소인 두축거는 상대적으로 독립되면서도 교묘하게 서로 연결된 각자 폐쇄된 8개의 뜰로 구성된다.

(사진설명: 멀리서 장병동)

125개의 방을 가진 장병동은 아아하게 첩첩하다. 영산공부(榮山公府) 어사부(御史府), 진씨종사(宗祠), 세덕원(世德院), 수덕거(樹德居), 기린원(麒麟院)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뜰마다 돌사자와 조벽이 각자의 특색을 자랑한다.

어느 건물에 들어서든지 모두 대들보에는 조각, 기둥에는 그림, 창틀에는 조각이 화려하다. 특히 창틀에는 모두 모란과 봉황, 기화이초가 새겨져 복과 장수의 길한 뜻을 나타낸다.

거기에 실내의 단향목 의자와 스러운 식탁, 화려한 조각의 침대, 발받침대 등을 만지면 마치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역사를 피부로 느끼는 현실적이다.

(사진설명: 높이 솟은 성벽)

내성의 성벽은 명나라말기에 쌓은 것이다. 성위에 성가퀴를 쌓고 성의 두귀퉁이에는 문창각(文昌閣) 관제묘(關帝廟) 지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성위에 오르면 성안팎의 그림같은 경관이 눈에 안겨온다.

1632년의 명나라때 지은 하산루는 진씨가문이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은 방어성적인 건물이다. 벽돌과 돌로 지은 건물은 유사시 천여명을 수용할수 있다.

건물내부의 통로와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7층건물에서 3층부터 방에 창문을 냈고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는 2층에 높게 설계되어 바줄다리를 통해서야 지상과 연결된다.

(사진설명: 높은 하산루)

하산루 옥상에는 적군을 감시할수 있는 성가퀴가 있고 유사시 탈출을 위해 지하도까지 팠다. 또한 장시기동안 건물안에 묶일것을 감안해 우물과 방아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충분한 양의 식량도 저장되어 있다.

1642년에 세운 남서원은 이름처럼 진씨네 자손들이 공부하는 장소이다. 가든속에 위치한 남서원은 진씨가문의 학교로 손색이 없다. 진씨네 청년들은 모두 곳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벼슬길에 올랐다.

황성촌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진정경 묘지가 있다. 패방과 비석, 신도(神道), 석상 등이 묘지를 둘러싸고 있다. 오늘날 황성상부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되어 역사를 계속하고 있다.

위치: 산서(山西, Shanxi) 진성(晉城, Jincheng) 양성(陽城, Yangcheng) 북류(北留, Beil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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