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7 14:57:42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37] 복전: 삼거리의 호로병 성

(사진설명: 아름다운 복전촌의 일각)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서른 일곱 번째는 삼거리의 호로병 복전(福全, Fuquan)촌이다. 역사와 스토리로 가득찬 복전의 거리를 거닐면 세월의 변화를 느낄수 없다.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복전에서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알수가 없고 수백년의 세월도 곳에서는 순간에 그치 마을은 유유히 늙어가는 하다.

바닷가의 동네 복전은 예로부터 천년의 동네, 오래된 항만, 복건남부의 시골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사서에 의하면 1387 ()나라때 국경을 사수하라는 황제의 어명으로 곳에 성을 쌓았고 그로부터 복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라때 벌써 곳에 국토 수비군이 주둔했고 ()나라때는 동남연해의 무역항으로 부상해 오늘날도 복전에서는 부두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수 있다.

복전촌에 들어서면 먼저 복전고성(福全古城)”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성문이 보인다. 1387년에 축조한 복전고성은 지난 오랜 세월동안 수차 외세의 침략을 막으면서 국토를 지켜왔다.

특히 왜구가 범람하던 명나라때 복건의 천주성(泉州城) 안해성(安海城), 숭무성(崇武城) 침략에 무너지고 말았지만 복전성은 강적을 이기고 승리자로 남아 왜구항전사에 찬란한 폐지를 적었다.

복전성은 외형이 호로병모양이고 그로 인해 성안의 거리들은 대부분 삼거리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도 복전성의 성터가 남아 있고 거리와 골목은 여전히 어젯날의 모습을 유지한다.

거리와 골목 양쪽에는 고건물과 신건물들이 어울려 이채를 돋구는데 고건물이라 할지라도 주인의 알뜰한 보살핌으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찬란한 햇빛과 훈훈한 바다바람속에서 별다른 운치를 자랑한다.

복전성에는 원래 높고 든든한 성이 있었는데 1958년의 금문(金門)포격사건에서 성을 허물어 벽돌로 포대를 쌓고 성터에는 나무를 심어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성문유적지는 오늘날도 남아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바다를 향한 동문(東門) 왼쪽에 무미탑(無尾塔) 거느리고 있다. 무미탑의 북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어서 최고의 풍수를 자랑한다.

이미 복원된 서문(西門) 북문(北門) 웅장한 성과 균형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복전성의 일각을 드러낸다. 예로부터 복전촌에서는 결혼이나 장례때 반드시 서문을 통과해야 했고 지금도 복전촌에서는 풍습을 이어오고 있다.

복전촌의 다른 특색은 사당건물이다. ()나라때 대만(台灣) 복건의 성으로 귀속시키면서 복건의 많은 사람들이 대만을 개발하러 갔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조상에 대한 그림움을 표달하기 위해 분분히 고향에 돌아와 사당을 지었다.

()씨가문 사당과 () 가문 사당 등은 모두 가족을 거느리고 대만으로 사람들이 고향에 남긴 그리움의 표징이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대만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오는 뿌리로 되었다.

청나라때 재상을 지낸적 있는 장덕경(蔣德璟) 지은 장씨가문의 사당인 가묘(家廟) 장덕경 생가는 북문가에 위치해 있다. 원래 다섯겹에 다섯칸 너비의 장씨가묘 후원만 남아 있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던 장덕경 생가도 7개의 계단과 넓은 뜰만 남아 있다.

복전촌에는 마을 가운데 원룡산(元龍山)이라고 하는 산이 하나 있다. 산정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멀리 푸른 바다가 눈에 보인다. 전쟁때면 산은 감시초소이고 평화시기에는 문인묵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되었다.

그로 인해 원룡산 부근에는 군대의 식용수로 사용한 만군정(萬軍井)이라는 우물과 병기를 만들때 사용한 우물 타철정(打鐵井), 물을 모아둔 관정지(官廳池) 비롯해 다양한 수계가 있다.

또한 원룡산 도원동(桃源洞)”, “산해대관(山海大觀)”, “길룡비도(吉龍飛渡)” 마애석각들이 힘있는 필체를 자랑하면서 어젯날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런 마애석각과 수려한 산수, 사이에 위치한 절과 암자, 대궐, 패방들이 함께 모여 어젯날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역사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복전에서 유명한 것은 무술과 , 음악이다. 당송때 중국의 중부로부터 전해진 남음(南音) 궁중음악으로써 명나라때에 곳의 사병들이 고향을 그리울때마다 들었고 오늘날은 복전촌 사람들이 누구든지 좋아하는 음악으로 부상했다.

이밖에 종이로 사람을 만드는 공법 또한 곳에만 있다. 90여세에 달하는 복전촌의 할머니가 만든 종이사람은 표정이나 동작이 살아 있는 생동하기 그지없다.

교육을 중시한 복전촌은 예로부터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복전출신의 사람들이 재상을 지내기도 했고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더더욱 많았으며 그들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서당을 만들었다.

오늘날도 복전촌은 상시 교육을 형성해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고 성공한 그들은 다시 고향의 교육에 투자하면서 고향에 보은하고 사회에 환원한다.

복전에는 전기적인 스토리들이 아주 많다. 복전의 유명한 의사 장제유(蔣際酉) 사람을 구한 이야기는 몇날며칠을 이야기 해도 못하며 승천사(承天寺) 거북이와 복전의 인연이나 토지묘에서 비를 기원하는 신비한 전설은 수도 없이 많다.

위치: 복건(福建, Fujian) 천주(泉州, Quanzhou) 진강(晉江, Jinjiang) 금정(金井, Jin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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