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2 08:16:36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58] 나전: 시골정취가 짙은 옛 마을

(사진설명: 나전촌의 아늑한 골목)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여덟 번째는 시골정취가 짙은 동네 나전(羅田, Luotian)촌이다. 인근동네와 만수궁(萬壽宮)사이, 남창(南昌)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나전은 예로부터 불교신자와 행상들이 필히 거쳐가는 번화한 곳이었다.

1120여년전의 ()나라때 나전(羅田)출신의 황극창(黃克昌) 난을 피해 곳에 이르러 고향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새로운 동네 이름을 나전이라 하였다. 오늘날도 곳에는 모두 황씨성만 살고 있으며 그들은 엄밀한 관리체계와 완정한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동서남북에 문을 하나씩 마을에는 가문의 황씨들이 가족별로 나누어 살고 있다. 반들반들한 청석길과 차바퀴흔적이 역역한 거리들이 째인 구도를 자랑하는데 사이로 고건물과 벽돌조각, 석각, 목각 등이 옛스럽고 정교하다. 또한 골목과 거리지하에 완정하게 조성된 배수시설은 나전 선조들의 총명과 지혜를 충분히 보여준다.

나전촌에는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은 골목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3m 너비에 400m 길이의 골목에는 돌을 깔았고 지하에는 하수도를 팠다. 골목은 옛날 인근 동네의 불교신자들이 절을 찾아갈때 거쳐가던 길이었으며 남창까지 통하는 고도(古道) 구간이기도 했다.

최고 번성기에 나전에는 철공소와 식품가게, 양조장, 약방, 금은장신구방, 전당포 백여개의 상가가 운집했었다. “앞쪽 거리에는 온갖 비단, 뒷쪽 거리에는 창고, 위쪽 거리에는 소금과 잡화, 아래쪽 거리에는 술과 담배, 수평거리에는 다방과 음식점, 수직거리에는 쌀과 기름이라는 기록에서 번창함을 읽을수 있다.

오늘도 많은 가게들이 영업하는 골목의 돌길을 걸으면 거리의 어젯날 번창함과 찬란함이 충분히 느껴진다.

세대부제(世大夫第) 나전의 부자 황수문(黃秀文) 1762년에 지은 건물이다. 우물식으로 둥글게 담을 두른 건물군락에는 건물과 건물사이에 다양한 모양의 천정(天井) 많이 것이 특이하다.

건물군락에는 오늘도 골목 4갈래와 80, 23, 60, 11, 복도 3개가 남아 있다. 각자 서당과 하인방, 제사방, 잔치방 다양한 기능을 갖춘 건물은 합리하고 정교한 구도와 소박하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세대부제는 완벽한 기능을 갖춘 작은 세상이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넓은 면적의 파티장과 후손들이 공부하는 서당, 다양한 물건을 저장하는 창고, 방앗간, 사양장, 탈곡장 등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계서당(啓緖堂)이라는 이름의 안채는 서이당(敍彛堂) 선화당(宣化堂) 양쪽에 거느리고 있다. 후원의 창문에 모양이 상이하고 금방이라고 날것 같은 박쥐 100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중국어에서 박쥐는 ()자와 같은 음이기 때문에 조각은 가지복을 의미하는 백복도(百福圖) 불리운다. 또한 박쥐가 가득한 창문은 입체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환풍과 채광효과도 가진다.

나전촌에는 10여개의 우물이 있는데 세대부제에 위치한 우물이 나전촌 최초의 우물이다. 12m 깊이의 우물은 우물입구를 우물 () 모양으로 쌓았다.

나전촌의 동구밖에는 천여년의 수령을 가진 녹나무가 아직도 무성한 녹음을 떠이고 있다. 전한데 의하면 녹나무는 황극창이 동네를 조성하면서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전촌에서 먹어보아야 음식으로는 해파(楷杷)하고 하는 떡이다. 그밖에 나전촌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일하러 도시로 진출했기 때문에 동네에는 노인이나 꼬마들밖에 없다.

문을 보는 사람도 노인이고 가게를 지키는 사람도 노인이며 심지어 녹나무 그늘에서 민속공연을 펼치는 사람도 모두 노인이다. 하지만 골목과 물가에서 노니는 것은 내일을 의미하는 꼬마들이다.

위치: 강서(江西, Jiangxi) 남창(南昌, Nanchang) 안의(安義, Anyi) 석비(石鼻, Shi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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