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4 08:21:53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74] 우가: 돌들의 우씨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우가촌)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중 일흔 네 번째는 돌들의 우(于)씨동네 우가(于家, Yujia)촌이다. 우가촌에서는 돌로 된 누각, 돌로 쌓은 집, 돌을 깐 뜰, 돌로 만든 거리, 돌 다리, 돌기둥과 돌로 된 대들보, 돌문, 돌현판 등이 굳어진 음률처럼 건축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과 같은 사면의 산에 안긴 우가촌은 동구밖에 이르러서야 동네가 보인다. 우가촌은 동쪽에 청량각(淸凉閣), 서쪽에 서두각(西頭閣), 남쪽에 관음각(觀音閣), 북쪽에 용천각(龍天閣)이라는 문 네 개를 두고 있다.

동네 어느 곳에서나 돌을 볼수 있는 우가촌은 1998년에 돌민속촌으로 명명받았다. 그로 인해 일명 석두촌(石頭村)으로도 불리우는 우가촌은 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우가촌은 명(明)나라때의 민족영웅인 우겸(于謙)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1449년부터 1457년사이 명나라때 쿠테타를 일으킨 우겸이 살해되자 그의 후손들이 고향인 절강(浙江, Zhejiang)성을 떠나 북상해 하북(河北, Hebei)성산속에 이르러 터를 잡았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우가촌으로 발전해왔다.

(사진설명: 어가촌의 골목)

이 곳에 터를 잡고 동네를 형성하던 초기 이 곳에는 물이 부족했고 따라서 엄격한 용수의 룰을 정했다. 청(淸)나라때 세운 비석에 의하면 우가촌에는 생활용수와 생산용수의 관리와 배분에 관한 규정이 세부적으로 되어 있다.

신을 공양하는 절과 문의 기능을 가진 누각, 노래와 춤을 공연하는 무대건물은 우가촌의 기본적인 건축구도이다. 심심산골에 터를 잡은 이 우가촌에 오늘날까지 보존된 옛 절과 누각, 무대건물은 22개나 되고 또한 모두 석조건물이다.

다양한 모양을 자랑하는 이 곳의 건물들은 조금이라도 간격이 없이 모두 하나로 묶여 있다. 거리와 거리도 한 마음이라는 뜻의 동심교(同心橋)로 연결되어 있다.

우가촌 선조들은 동네를 형성할때부터 동서향의 길은 거리 가(街)라 하고 남북향은 골목 항(巷), 막힌 길은 후퉁(胡同)이라고 명확히 구분했다. 오늘날까지 우가촌에는 거리 6갈래, 골목 7갈래, 후퉁 18갈래가 건물들사이로 꼬불꼬불 뻗으면서 질서와 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어가촌의 일각)

순박한 민풍을 유지하는 이 곳 사람들은 손님을 최고수준으로 대접하고 마을의 법칙과 가훈을 엄격히 지키며 500여년동안 이어온 “가문의 노래”를 부르면서 남녀노소가 조화롭게 생활한다.

400여가구가 살고 있는 우가촌에는 돌집 4천여칸, 돌길 3700m, 돌을 쌓아 만든 우물 1000곳, 석기 2000여점, 돌비석 200여점이 보존되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우가촌은 풍수학적으로도 최고의 위치에 터를 잡았다고 할수 있다.

일명 신선각(神仙閣)이라고도 하는 동문인 청량각은 스토리가 깃들어 있는 건물이다. 전한데 의하면 우가촌의 랜드마크인 청량각은 1581년에 무궁무진한 힘을 가진 우희춘(于喜春)이라는 사람이 혼자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원래는 9층으로 계획했으나 건물이 2층까지 올라갔을때 우희춘이 부주의로 손을 다치고 이어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냥 2층으로만 남아 있으며 청량각의 돌길에서는 지금도 그가 흘린 핏자국을 볼수 있다고 한다.

(사진설명: 우가촌의 마당)

후에 우가촌민들이 2층 건물위에 조각된 대들보와 그림이 그려진 기둥, 2중으로 된 처마를 떠인 이쁘장한 3층건물을 추가했다. 건물의 서쪽에는 금박을 칠한 부채형의 현판에 “청량각’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남쪽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했다.

그리고 동쪽에는 바람에 한들거리는 돌을 달았는데 바람에 세게 불면 흔들리지 않고 약한 바람이 불때면 한들거리면서 서로 부딫쳐 우아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기이한 것은 이 거대한 돌의 대궐이 초석을 두지 않고 돌과 돌사이에 아무런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순전히 돌위에 돌을 쌓아 건물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자연형성된 돌위에 커다란 돌을 겹놓으면서 건물을 지었는데 최대로 바위 하나의 무게가 몇톤에 이른다. 옛스러우면서도 조방의 미를 가지는 이 건물은 미학과 역학, 건축학, 수학, 기하학, 물리학 등을 한 몸에 지닌 건축학의 기적이라고 전문가들을 입을 모은다.

(사진설명: 어가촌의 일각)

명나라 후반에 지은 사합루원(四合樓院)은 하단은 돌로 쌓고 그 위에 벽돌을 올려 지은 건물이다. 동쪽과 서쪽 뜰로 나뉘는 이 건물군락에는 100여칸의 방이 있다.

웅장하면서도 소박하고 우아하면서도 넓은 이 건물은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안채의 2층에는 넓은 공간에 벽체를 만들지 않고 기둥과 대들보만 두어서 탁 트인듯 넓어보인다.

남쪽에는 긴 복도를 조성했는데 그 복도에 서서 바라보면 남산이 저 멀리 한 눈에 안겨오고 발아래로는 하인방과 매돌방, 우물방 등 기능을 가진 별채들이 줄지어 있다.

돌의 문화를 더욱 잘 보존하고 민속문화를 잘 이어가기 위해 우가촌은 돌박물관을 만들었다. 박물관에는 명청시기의 석기와 자연형성된 돌의 예술품, 돌로 만든 다양한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설명: 어가촌의 일각)

돌 박물관은 석기전시실과 기이한 돌 전시실, 도자기 전시실, 농기구전시실, 생활용기 전시실, 신발가 모자 전시실 등 여섯개 전시실로 구성된다. 박물관의 정원에는 기이한 모양의 돌과 우아한 돌, 조경석, 태호석, 자갈, 무늬가 있는 돌, 오색의 돌 등 다양한 돌이 있고 온갖 식물화석도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우가촌을 관광하다가 힘들면 임의로 길옆에 놓여 있는 돌의자에 앉아서 다리쉼을 하면서 돌벽으로 자라난 들꽃과 한가롭게 돌길위를 걸어다니는 수탉을 구경할수도 있고 배가 고프면 고구마와 밀가루로 뽑은 맛잇는 국수를 먹을수도 있다.

우가촌은 특이한 건축미를 보유하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거기다가 독특한 민속풍토가 우가촌을 심산속의 의미있는 돌의 동네로 부상시켰다. 원초적인 생활은 조화로운 노래와 같고 그 노래속의 음부는 우가촌의 돌과 정원과 건물과 사람이 모여서 형성한다.

위치: 하북(河北, Hebei)성 석가장(石家庄, Shijiazhuang)시 정형(井陘, Jingxing)현 우가(于家, Yujia)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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