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9 08:39:21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77] 편성: 심산속의 신기한 산채

(사진설명: 아름다운 편성촌의 일각)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중 일흔 일곱 번째는 심산 속의 신기한 산채 편성(偏城, Piancheng)촌이다. 이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편성촌은 삼면에 산이 둘러선 산 기슭의 옛 성이다.

치우칠 편(偏)자에 재 성(城)자를 붙여 지은 편성이라는 동네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일설에는 편성촌이 한쪽에 치우친 외 딴 곳에 있다고 해서 편성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다른 설에 의하면 이 동네가 성은 성인데 북과 남, 동쪽에만 성문이 있고 서쪽에 성문이 없기 때문에 완벽한 성이 아니라고 인정되며 따라서 이름이 편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성에 성문 네 개를 둔 것이 아니라 세 개만 둔데는 오행팔괘(五行八卦)의 설때문이라고 한다. 물에 속하는 북쪽에서 나무가 나고, 나무로 불을 지펴 남쪽은 불을 가르키며, 동쪽은 나무에 속하기 때문에 나무와 나무가 서로 돕는데 서쪽은 금속을 대표하고 금속은 나무를 깎기 때문에 서쪽에 문을 두면 좋지 않다고 인정해서 서쪽에 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성(城)이란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을 의미하고 편성촌의 유가채(劉家寨)는 한 가문의 주거지이기 때문에 성하고는 거리가 멀고 따라서 편성이라 했다는 것이다.

편성의 유래와 무관하게 유(劉)씨가문이 조성한 편성촌은 동네 주변에 청석을 쌓아 10m 높이의 성을 쌓고 동쪽과 남쪽, 북쪽에 성문을 냈다. 정문은 동쪽문에는 유씨가문의 영원한 안녕을 기원하는 “영안채(永安寨)”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800여년전 송(宋)나라때 조성한 유가채는 사합원(四合院)구도를 본 따서 대체로 네모나다. 단, 산기슭에 위치했기 때문에 산세를 따라 성이 혹은 높고 혹은 낮게 뻗어 있을뿐이다.

명청시기의 분위기가 다분한 벽돌조각과 석각, 목각이 뜰 47개에 둘러선 건물들에 즐비하다. 이런 건물들에는 오늘날도 촌민들이 주거하면서 어젯날 건물에 현대적인 색채를 더해주고 있다.

양광정(楊廣庭)대원(大院)은 세 겹의 뜰을 가진 건물군락이다. 하지만 가장 안쪽에 위치한 안채만 남아 있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일본군의 폭격에 무너졌다.

항일전쟁때 이 건물은 편성현 정부의 사무실이었다. 오늘날도 이 건물의 정원에는 검게 타버린 대들보가 바닥에 드러누워 어제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는 듯 하다.

편성촌에는 또 육문거랑(六門圪廊)이라는 골목이 있다. 유씨네 16대 손인 유용(劉榕)의 이름을 붙여 지은 골목이다. 유용이 7형제에서 여섯째임으로 이름하여 육문인데 오늘날도 이 골목에는 전부 유용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 육문거랑의 남쪽에 편성촌에서 가장 위엄있는 건물인 장군제(將軍第)가 있다. 산발을 따라 비스듬히 위로 올라간 이 건물은 입구에서 가장 안쪽의 안채까지 낙차가 9m나 된다.

장군제와 그 맞은켠 유용의 저택인 진사제(進士第)의 문위에는 모두 현판이 완정하게 남아 있다. 특히 진사제의 현판이 새것처럼 보존되어 있는데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이 건물에 항일영웅이 주거했기 때문에 그의 영웅기개가 진사제를 보호했고 따라서 진사제의 현판과 진사제의 건물이 파손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보전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편성촌의 사람들은 오늘날도 원시적인 부엌에 나무를 지펴 밥을 짓고 우물의 물을 마신다. 마침 끼니때가 되어 거리를 거닐면 집집마다 들어와서 함께 식사하자고 열정적으로 부른다.

위치: 하북(河北, Hebei)성 한단(邯郸, Handan)시 섭(涉, She)현, 편성(偏城, Piancheng)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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