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31 08:49:58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79] 주가욕: 강북의 첫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주가욕촌)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중 일흔 아홉 번째는 강북의 첫 동네 주가욕(朱家峪, Zhujiayu)촌이다. 산언덕에 비스듬히 들어앉은 주가욕촌에는 사당과 누각, 석교와 옛 거리, 절과 샘물 등 80여군데의 명소가 있다.

사면에 푸른 청산이 둘러서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주가욕촌에 들어서면 원초적인 자연과 유구한 역사의 옛스러움, 아늑한 고요를 느끼면서 인생의 뜻도 되새길수 있다.

주가욕촌은 원래 성각욕(城\角峪)으로 불리웠다가 후에는 부산욕(富山峪)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다가 명나라 개국황제와 동성인 주(朱)씨네가 입주하면서 주가욕으로 또 이름을 바꾸고 오늘까지 이른다.

(사진설명: 주가욕촌의 입구)

주가욕촌에는 크고 작은 고건물 200여채, 다양한 모양의 석교 20여개, 우물 20여군데, 절 10여채가 있는 동시에 두 개의 석교, 두 갈래의 고도(古道), 문창각(文昌閣), 관제묘(關帝廟), 주씨사당 등을 비롯해 명소도 부지기수이다.

1721년에 판 성수영천(聖水零泉)은 성수묘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우물이다. 우물입구는 돌로 쌓았고 우물의 역사를 적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한데 의하면 청나라때 가뭄이 들어 이 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아주 영험해 우물을 파고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강희쌍교(康熙雙橋)라는 이름의 명소에는 두 개의 석교가 10m거리에 사이좋게 위치해 있다. 1670년에 축조한 동쪽의 석교와 1688년에 건설한 서쪽의 석교는 나란히 300여년의 나이를 먹었다.

(사진설명: 주가욕촌의 문창각)

상하 이층으로 된 이 석교는 석회석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청석을 무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과 풍상고초에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교량 전문가들은 이 석교가 입체교의 시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내린다.

1838년에 지은 문창각은 하단에 청석을 쌓고 그 위에 누각식 건물을 지었다. 누각의 지붕에는 두 마리 용이 구슬을 노는 벽돌조각이 새겨져 있고 오늘날까지 한 번도 보수한 적 없지만 변함없이 든든하다.

문창각은 남쪽 문봉산(文峰山) 정상의 괴성루(魁星樓)와 멀리 마주한다. 수재를 키운다는 괴성루와 벼슬을 도와준다는 문창각이 함께 하는 이런 구도는 이 곳에만 있다.

(사진설명: 주가욕촌의 거리 일각)

여름철 장마때면 운무가 자욱하고 구름이 낮게 껴서 때로는 누각위를 스켜지나가고 때로는 누각하단의 문을 통과하면서 문창각을 봉래(蓬萊)의 선경으로 만든다.

주가욕촌의 남쪽에 위치한 문봉산은 모양이 피라미드와 흡수하다. 지난 수백년동안 문봉산에는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고 정상에 괴성각을 떠이고 있다.

문봉산의 서쪽에 솟은 필가산(筆架山)은 괴성이 붓을 걸어두는 문방구이며 동쪽의 저지는 괴성이 사용하는 괴성연지(魁星硯池)라고 하는 벼루이다. 그야말로 자연의 신묘함에 할말을 잃게 되는 경관이다.

(사진설명: 주가욕촌의 일각)

명나라때 건물인 관제묘는 규모는 작지만 건물이 아주 특이하다. 관제묘는문무를 겸한 충성의 화신 관우(關羽)를 공양하는 절이고 중국인들은 관우를 가장 숭배하기 때문에 중국인이 사는 동네에는 모두 관제묘가 있다.

관제묘 삼면의 외벽은 커다란 청석으로 쌓고 가로 놓인 상단의 문틀에는 용 두 마리가 보석을 희롱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건물 내부의 두 기둥에는 꿈틀거리며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용이 새겨져 있다.

1882년에 지은 사당건물인 주씨가사(朱氏家祠)는 정원 두 개를 거느리고 있는데 안쪽 정원에 우아하고 장엄해보이는 사당건물이 위치해 있다. 청석으로 외벽을 쌓은 사당은 날아갈듯한 처마에 청색의 기와를 떠이고 있다.

(사진설명: 주가욕촌의 일각)

사당앞 정원에는 백여년 수령을 자랑하는 측백나무 한 그루가 푸름을 펼친다. 조상에 제사를 지내기에 앞서 사람들은 비어 있는 바같쪽 정원에서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나서야 안쪽 뜰을 통해 사당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밖에 사당의 동쪽벽에는 사당의 역사를 기록한 비석이 세워져 있고 벽돌로 쌓은 아치형의 문에는 미닫이 양식의 철문이 특이하다. 문앞 계단 양쪽에는 장대석이 자리를 지킨다.

1898년 바위를 뚫고 솟아나는 샘물 장류천(長流泉)앞쪽에 네모진 연못을 팠다. 못의 벽체에 서로 마주보는 용의 머리를 새겼는데 그 용의 입으로 샘물이 흘러 못에 모인다.

(사진설명: 주가욕촌의 일각)

문봉산의 동쪽 기슭에는 또 단정칠공교(壇井七孔橋)라고 하는 우물과 다리 명소가 있다. 이 우물은 모양이 아구리가 좁고 하단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진 단지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단정이다.

단정의 삼면에는 작고 아담한 다리 7개가 조화롭게 운치를 돋군다. 그리고 머지 않은 곳에는 또 600여년의 수령을 가진 측백나무가 두 사람이 둘러서야 그러안을수 있는 굵은 몸체를 가지고 거대한 우산같은 그늘을 만든다.

예로부터 문화와 교육을 중시해온 주가욕촌은 문화촌으로 불리운다. 옛날부터 서당이 많았고 근대에 와서는 중국 최초라 할수 있는 여자학당이 섰으며 따라서 많은 지식인을 키웠다.

(사진설명: 주가욕촌의 일각)

정치와 역사, 민족, 종교, 문화, 정원, 건축, 예술, 자연, 지리 등 여러 가지 과학을 언급한 백과서적과 같은 주가욕촌은 산동 최고의 옛 동네, 강북의 제일 시범시골로 공인된다.

위치: 산동(山東, Shandong)성 제남(濟南, Jinan)시 장구(章丘, Zhangqiui)현 관장(官庄, Guanzhuang)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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