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2 09:57:34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95] 낙등: 천년역사의 바이족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낙등촌)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중 아흔 다섯 번째는 천 년 역사의 바이족 동네 낙등(諾鄧, Nuodeng)촌이다. 낙등촌에 들어서면 마치 살아 있는 역사책을 읽는 듯 기이한 건물과 다채로운 풍속을 통해 낙등촌 천년의 문화를 느낄수 있다.

낙등촌은 1300여년전의 당(唐)나라때 조성되어 지금까지 이름도 바꾸지 않고 동네는 더욱 드팀없이 똑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금업으로 인해 발전해온 낙등촌은 오래동안 소금가공을 주로 해왔다.

최근에 이르러 각지에서 소금업이 발전하면서 소금이라는 낙등촌의 핵심산업이 무너지고 따라서 낙등촌은 세상뒤에 모습을 감추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진설명: 낙등촌의 건물들)

오늘날 낙등촌에는 소금을 생산하는 우물이 하나만 남아 있는데 그것도 주변에 항상 습하고 가끔 건조한 곳에 하얀 소금알이 나타나 고대 중국의 소금무화를 연구하는 교재로 될뿐이다.

명청(明淸)시기에 건설한 낙등촌의 고건물은 모두 산세를 따라 산언덕에 첩첩 자리를 잡고 있다. 경사도가 급한 언덕이라 윗쪽의 집은 항상 아랫쪽 집의 지붕과 나란히 한다.

낙등촌의 가옥은 마당을 사이두고 사면에 건물이 있는 사합원과 건물 한채만 지은 구도, 조벽뒤에 세 겹의 건물이 있는 구도, 마당 다섯개를 가진 사합원 구도 등 중국고대의 전통적인 건축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설명: 낙등촌의 건물)

또한 산발을 따라 비스듬히 조성되었기 때문에 낙등촌의 건물은 모두 경사도에 따라 교묘하게 공간을 설계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구현하고 있다.

가옥외에도 산기슭에서 시작해 산위로 올라가면서 용왕묘와 강서회관, 만수궁, 황(黃)씨가문의 제명방(題名訪), 문묘, 옥황각앞의 문 등 문화유적들이 즐비하다.

옥황각앞의 문을 지나면 많은 고건물을 거느린 옥황각(玉皇閣)에 이르는데 주변에는 키 높은 고목이 울창하게 솟아 있다. 이런 고목은 대부분 30m높이에 이르고 최고의 수령은 800여년이나 된다.

(사진설명; 만수궁의 일각)

800여년전 원(元)나라때 지은 만수궁(萬壽宮)은 낙등촌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만수궁은 최초에 외지의 객상들이 묵어가던 회관이었다가 명청시기에 이르러 절로 바뀌었다.

절로 된 다음 처음에는 이름을 축수사(祝壽寺)로 부르다가 후에 만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만수궁의 연혁을 통해 낙등의 경제발전상황과 문화의 변화과정을 잘 볼수 있다.

경제가 활성화되면 문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명청시기에 낙등에서는 교육풍이 불고 따라서 과거시험에 합격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고 운남지역에서 많지 않은 인재의 동네로 되었다.

(사진설명: 낙등촌의 건물)

낙등인은 바이족이지만 족보는 내륙지역 한족의 족보를 사용한다. 과거 중원지역의 한족들이 이 곳에 와서 현지의 바이족들과 융합되면서 오늘날 낙등의 바이족으로 된 것이다.

낙등촌은 어젯날의 지방극과 원시적인 춤, 고유한 음악, 원초적인 종교신 등을 산간지역 바이족의 원생태 문화를 완정하게 보전하면서 상이한 시각으로 지난 천여년동안 낙등의 문화와 경제, 정치, 사회, 민속 등 제반분야의 역사과정을 구현하고 있다.

그밖에 오늘도 집집마다 말을 기르는 낙등촌에서 어젯날 말잔등에 소금을 나르던 흔적을 엿볼수 있다. 낙등촌의 고종평(古宗坪)과 회민평(回民坪)이 바로 어젯날 마방(馬幇)의 소재지이다.

(사진설명: 낙등촌의 거리)

중국의 다른 곳에서 볼수 있는 절과 패방, 회관, 사당, 저택, 골목, 무덤 등을 자그마한 낙등에서도 모두 볼수 있다. 낙등촌의 주변에는 또한 자연적으로 형성된 태극무늬, 호두산의 도교건물, 교량박물관으로 불리우는 고대의 교량 등 아름다운 산수와 풍부한 문화재가 많다.

위치: 운남(雲南, Yunnan)성 대리(大理, Dali)주 운룡(雲龍, Yunlong)현 낙등(諾鄧, Nuodeng)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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