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6 10:01:36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진-43] 태평: 영원한 붉은 기억의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태평고진)

중국의 유명한 고진(古鎭) 시리즈 중 마흔 세 번째는 영원한 붉은 기억의 동네 태평(太平, Taiping)이다. 태평고진은 홍군이 네 번이나 적수(赤水)강을 건너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위해 기여한 붉은 역사문화동네이다.

고란하(古蘭河)와 적수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태평은 예로부터 중요한 무역동네였다. 지세가 높은 동남쪽과 상대적으로 낮은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자리를 잡은 태평은 거리가 대부분 돌계단으로 되어 산의 동네로 불린다.

수백개의 돌계단으로 된 태평의 옛 거리를 걸으면 양쪽에 오백여년전에 지어진 고건물로 된 가게가 즐비해 장이 서는 날이면 온갖 물건을 팔아 사람들로 붐빈다.

(사진설명: 태평고진의 일각)

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태평은 옛날에는 야랑국(夜郞國)에 속했고 삼국시기에는 제갈공명이 이 곳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삼사백년전의 청(淸)조때는 유명갑부가 이 곳에 학당을 차리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이 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는 1935년 모택동(毛澤東)이이끄는 홍군이 2만 5천리에 달하는 기나긴 장정을 하면서 국민당 군대를 따돌리기 위해 적수를 네번 왕복하면서 이 곳을 경유했기 때문이다.

북상하는 홍군을 소멸하기 위해 장개석(蔣介石)이 수십만 대군을 파견했으나 홍군은 적수를 네번 왕복하는 기동전술로 국민당 군대를 이 곳에서 전멸시킴으로써 장정의 승리에 토대를 마련했다.

(사진설명: 태평의 거리)

홍군은 그 때 태평에 머무는 동안 슬로건을 써서 벽에 붙이고 통지문을 쓰는 등 혁명과 연관되는 많은 유적과 문화재를 남겼다. 홍군이 머문 거리도 그 때문에 장정가(長征街)로 불리운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적수의 기슭에도 빌딩숲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상가를조성하고 옛 거리를 저 뒤로 따돌리고 있다. 어제의 번화함을 잃어버린 옛 거리의 돌계단을 따라 걸으면 마치 어제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 하다.

문과 벽에는 “홍군 취사반”, “여성 홍군 주소” 등 어젯날의 흔적이 또렷이 보인다. 그런 거리를 걷다가 짚신을 파는 할아버지나 쌀을 사는 주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어제로 돌아간듯 착각하게 된다.

(사진설명: 태평고진의 일각)

1975년 홍군의 적수도하와 연관되는 유일한 “중국 공농홍군 장정 전시관”이 태평에서 개관되어 홍군의 깃발과 홍군 의학서적, 인감, 그릇 등 300여점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그 중 유난히 눈길을 문화재는 2m 길이의 나무이다. 설명에 의하면 홍군이 태평에 진입했을 때 현지의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나무 아래에서 노숙했다고 한다.

홍군이 태평을 떠난 뒤 태평의 백성들은 홍군을 그리는 마음으로 그 나무를 아껴 키웠다. 그러다가 20년전에 그 나무가 고사한 후 현지인들은 그 나무의 한 토막을 잘라 전시관에 전시해서 어제의 아름다운 일을 계속 전하고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태평고진)

적수의 뭍에는 “중국 공농홍군 적수태평도 기념비”가 서 있다. 이 비석의기초 높이는 1.9m, 3단계로 나뉘며 단계별 높이는 50cm, 비석의 높이는 12m, 비석 꼭대기의 깃발 길이는 2.6m이다. 이 숫자를 연결하면 1935,12,26일이고 그 날은 바로 네번째로 적수를 건느면서 성공을 거둔 그 일자를 의미한다.

12월 26일은 모택동 주석의 생일이고 지금도 해마다 청명이 되면 현지인들은 꽃을 가지고 이 비석앞에서 모택동 주석의 위대한 업적을 기린다. 홍군이 적수를 건널때 경유한 뭍의 바위에도 기념비가 조각되어 있다.

사천(四川, Sichuan)성 노주(瀘州, Luzhou)시 고란(古蘭, Gulan)현시에 위치한 태평은 교통이 편리하다. 성도시의 하화지(荷花池, Hehuachi)버스 터미널에서 고란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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