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8 08:39:09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진-51] 나천: 용이 나는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나천고진)

중국의 유명한 고진(古鎭) 시리즈 중 쉰 한 번째는 용이 나는 동네로 불리는 나천(羅泉, Luoquan)이다. 나천고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2.5km에 달하는 기원전 진(秦)왕조 때의 옛 거리이다. 긴 거리가 꿈틀대는 용과 같다고 해서 용이 나는 동네라 불린다.

그밖에 천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천에는 진조때에 소금을 캐기 시작한 염정(鹽井)도 있다. 나천의 정염개발은 삼사백년전의 청(淸)조에 이르러 최고에 달해 그 때 당시 정염을 생산하는 염정이 1500여개에 달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엑스포에서 나천의 정염은 금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설명: 염신전의 일각)

나천에는 대궐 9개, 절 9개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대부분 건물이 다 파손되고 염신전(鹽神殿)만이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관중(管仲)을 소금의 신으로 모신 염신전은 중국에서 이 곳에만 있다.

이 곳에 모인 소금업자들은 1868년에 돈을 모아 나천에서 용의 머리가 위치한 곳에 염신묘를 지었다. 절의 문과 패방(牌坊), 무대, 별채, 대궐, 복도, 뜰 이 잘 짜인 절의 구도를 형성한다.

대궐에는 소금의 신 관중이 모셔져 있고 관우(關羽)와 불의 신 축융(祝融)이 양쪽에 위치해 있다. 세 단계로 된 기초위에 올라앉은 대궐은 날아갈듯한 이중 처마를 가지고 있다.

(사진설명: 염신전의 일각)

대궐의 지붕에는 용들이 보석을 빼앗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백여년의 풍상고초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듯 생동하다.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는 염신묘는 나천의 찬란했던 어제를 잘 보여주면서 오늘까지 향불을 이어온다.

오늘날 염신묘는 나천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되었다. 사람들은 염신묘의 돌계단에 앉아 유유히 햇볕을 쪼이는데 이 곳의 시간은 다른 곳보다 더 늦게 흐르는 듯 느껴진다.

무대를 지나 넓은 뜰에 들어서서 사면의 건물과 별채, 복도를 보면 세월이 흐르는 속에 어제의 찬란함은 보이지 않지만 굵은 기둥에 받들려 있는 대궐과 바람에 한들거리는 지붕위의 풀이 나천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사진설명: 나천 회의 유적지)

이밖에 나천에는 백여년전 청(淸)조때 지은 복음당(福音堂)이 새로 보수되어 독특한 건물양식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1911년에 봉건사회를 끝내기 위한 철도봉기회의가 개최된 이 곳이 바로 사서에 길이 남는 “나천 회의 유적지”이다.

전설에 의하면 성황(城隍)은 원래 해자를 보호하는 신이고 그 때문에 성황묘는 성에서 가장 중요한 절이다. 나천의 성황묘는 다리를 사이두고 염신묘와 마주한다.

하지만 어젯날 향불이 성황을 이루던 성황묘가 오늘날은 모습을 바꾸어 색 바랜 문에 큰 자물쇠가 잠겨 있고 문틈으로 들여다 보면 성황묘의 뜰에 잡초가 자라나 처량함을 안겨준다.

(사진설명: 나천의 거리와 건물)

나천의 옛 거리를 거닐면 꼬불꼬불한 거리 양켠에 자리를 잡은 푸른 기와의 나뭇집들이 옛 동네의 여유를 잘 보여준다. 이 곳에서는 세월이 안겨준 풍상고초와 그 속에서 지켜온 나천인들의 근면과 대범함이 엿보인다.

이 곳의 여인들은 즐거운 환담속에서도 자신이 해야할 바느질을 잊지 않고 노인들은 차를 마시면서 연극을 본다. 거기다가 따뜻한 햇볕이 만족스러운 그들의 얼굴위에 쏟아져 보기만 해도 그들처럼 마음이 행복해진다.

나천의 옛 거리에는 찻집이 열개나 있지만 집집마다 만석이다. 어느 찻집에 들어가든 큰 잔에 부어 주는 차를 마시면서 이 곳 노인들의 입을 통해 나천의 찬란한 어제를 들을수 있다.

(사진설명: 나천의 성황묘)

나천에는 특이한 두부연이 있다. 콩을 매돌에 갈아 만든 이 곳의 두부는 부드럽고 하얀것이 특징인데 그 위에 맵고 뜨겁고 고소한 소스를 얹어 최고의 두부연을 만든다.

사천(四川, Sichuan)성 자중(資中, Zizhong)현에 위치한 나천은 교통이 편리하다. 성도(成都, Chengdu)버스 터미널에서 나천행 버스를 타거나 하중행 버스를 이용해 하중에 이른 다음 하중에서 나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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