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신후고진)
중국의 유명한 고진(古鎭) 시리즈 중 아흔 여섯 번째는 사면에 산을 둔 도자기의 동네 신후(神垕, Shenhou)이다. 신후고진은 남산에서 나는 석탄과 서산에서 나는 유약, 동산에서 나는 고령토로 중국 도자기의 일종인 균자(鈞瓷)를 만든다.
오천여년의 도자기 역사를 자랑하는 신후는 균자문화의 발상지로서 도자기 문화에 의해 형성된 지역적 특징으로 “중국 균자의 고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찍 기원전의 하상(夏商)시대때부터 신후에는 사람들이 주거하면서 농사를 짓고 도자기를 구웠다. 그 뒤 천여년전의 당(唐)나라때 균자(鈞瓷)가 만들어지면서 신후는 중국 북방의 5대 도자기 허브의 하나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신후고진의 옛 거리)
명청(明淸)시기에 신후의 도자기산업은 번성기를 누렸다. 그 때 이 곳에서는 “신후산에 들어서니 7리에 달하는 거리와 도자기 가마 72개가 있고 온 하늘에 연기가 자욱하다”는 말로 흥성하는 신후의 도자기산업을 묘사했다.
7리에 달하는 거리가 바로 오늘날의 신후 옛거리이다. 동서남북에 네 개의 산채와 홍석교(紅石橋), 관야묘(關爺廟), 거리 2개로 구성된 옛 거리로는 초하(肖河)가 흐른다.
과거에 산적과 큰물을 막기 위한 방어용으로 지어진 산채건물은 큰 문과 키 높은 돌담, 포루를 가지고 있다. 산채마다 쑥을 바라보다는 의미의 “망호(望蒿)”, 하늘의 보우를 받다는 의미의 “천보(天保)” 등 우아한 이름을 가진다.
(사진설명: 신후고진의 고건물)
또한 산채의 이름을 청석에 새겨 산채의 문위에 높이 걸고 산채마다 그 산채만의 특유한 건물과 지역특색이 다분한 가옥, 그리고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밖에 옛 거리 양쪽에는 종교건물과 가옥, 시장과 가게들이 고유의 특색을 자랑한다. 종교건물의 대표로는 백령옹묘(伯靈翁廟)와 관제묘, 문묘(文廟), 백의당(白衣堂) 등이고 가옥으로는 백가원(白家院)과 온가원(溫家院), 왕가원(王家院) 등을 들수 있다.
건명산(乾明山) 정상에도 조사묘(祖師廟)라는 절이 하나 지어져 있다. 베란다를 가진 세 칸 너비의 조사전이 웅장하게 솟아 있고 그 옆에 소나무가 울창해 심히 장관이다.
(사진설명: 신후고진의 도자기)
봉시산(鳳翅山) 남쪽 기슭에 위치한 영천사(靈泉寺)에서는 수령 1500여년의 백과수(白果樹)가 유명하다. 백과수의 뒷쪽으로 맑은 샘물이 흐른다고 해서 절 이름이 영천사이다.
균자라고 하는 신후의 도자기는 자연적으로 “도자기 가마에 들어갈때는 한 가지 색갈인데 가마에서 나올때는 만 가지 색갈을 띄는” 가치있는 도자기이다.
신후 균자유적에 대한 발굴을 통해 신후의 도자기가 천여년전의 당송(唐宋)때에 시작되었음이 증명되었다. 현대 신후에는 58개의 도자기 업체가 균자를 만들고 있으며 신후의 도자기는 중국 국가지도자들이 외국수반에게 선물하는 고급 도자기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신후 골동품 시장의 일각)
신후에서 전해지는 전설도 많다. 한고조(漢高祖)는 이곳에서 사냥을 즐겼고 한(漢)나라 장군 등유(鄧兪)는 이 곳에 군대를 집결시켰으며 봉기군 두령 이자성(李自成)도 이 곳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항일전쟁시기에 이 곳은 항일의 근거지였다.
2001년에는 이 곳에 신후 골동품 시장을 조성했다. 이 시장에서는 평일에는 도자기를 제작하고 시장이 서는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다양한 도자기와 옥기, 고대 화폐, 옛 서적, 서예 등을 거래할수 있다.
이 곳의 특징은 거리를 향한 가게에서는 제품을 팔고 가게의 뒷쪽에는 제품을 만드는 작업실을 두었다는 점이다. 또한 부근에 다양한 고건물을 거느리고 옛 동네와 옛 거리, 옛 물건이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사진설명: 중국 균자문화예술센터)
신후는 나무다리와 육지의 배놀이, 등불놀이, 사자춤 등 다양한 민속풍속을 보유한다. 또한 명절이 되면 현지의 예술단체를 초청해 지방연극을 선보이기도 한다.
하남(河南, Henan)성 허창(許昌, Xuchang)시에 위치한 신후고진은 교통이 편리하다. 하남 소재지 정주(鄭州, Zhengzhou) 버스 터미널에서 신후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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