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6 09:10:39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진-103] 리야: 세월 속의 진나라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리야고진)

중국의 유명한 고진(古鎭) 시리즈 중 백세 번째는 세월 속의 진나라 동네 리야(里耶, Liye)이다. 리야고진은 소박한 옛 거리와 옛 건물, 수려한 산과 물을 가진, 깊은 골방 속의 규수이다. 2002년에 옛 동네와 옛 거리, 옛 죽간이 발견되면서 리야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야란 토가(土家)족 언어로 “이 땅을 개척하자”라는 의미이다. 바로 이 땅에서 토가족선인들이 수렵민족으로부터 농경민족으로의 전환을 실현했다. 이 곳에는 일찍 6천여년전부터 인류가 살았으나 불편한 교통으로 인해 오래동안 뒤떨어진 외딴 동네로 남았다.

그러다가 사오백년전의 청(淸)나라때에 이 곳에 부두를 만들면서 번성의 길을 시작했다. 리야는 편리한 교통과 두터운 문화, 유구한 역사, 번영하는 무역으로 인근에 이름이 자자한 동네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리야고진)

유수(酉水)가 리야의 푸른 산속을 흐르면서 상중하 세 곳에 부두를 만들어 준다. 유수의 품안에 안긴 리야의 거리에는 고풍스러운 고건물들이 즐비하고 그 사이로 옛 거리들이 이리 저리 뻗으면서 아담한 동네를 형성한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검정 지붕을 한 배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부두에 빼곡이 정박하면서 강물위에 비친 등불과 유수기슭 건물의 등불과 어울려 운치 있는 야경을 연출한다.

청나라 초반에 형성된 리야 옛 거리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 가게들에서는 검정바탕에 금빛이나 녹색, 혹은 붉은 색으로 간판을 쓴 액자가 특히 고풍스럽다.

(사진설명: 리야고진의 옛 거리)

청석을 깐 리야의 거리들은 대부분 모두 부두로 통한다. 물가의 건물도 거리 양켠의 건물처럼 물가와 거리쪽에는 가게이고 뒷쪽에 안방을 두었다. 집과 집사이에는 키 높은 봉화벽(封火壁)을 세워 이채를 돋군다.

온갖 상품을 질서있게 전시한 가게와 다양하게 싸구려를 웨치는 주인들, 그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느라 떠들썩한 손님들이 리야의 번화함을 보여준다.

1732년에 신축된 문창각(文昌閣)은 붉은 기둥에 푸른 기와를 한 장엄한 건물이다. 처마에 단 18개의 풍경이 바람이 불때마다 귀맛 좋은 은은한 소리를 낸다.

(사진설명: 리야고진의 일각)

리야의 뒷산에 위치한 아려암(雅麗庵)은 새 소리만 들리는 아늑한 숲속에 위치해 있다. 우아하면서도 수려하고 아담하면서도 영이 느껴지는 아려암은 그림이고 시이다.

최초의 토가족 두령의 부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파파묘(婆婆廟)는 정교한 건축과 석각이 특색이다. 토가족 지역에서 유일하게 여성숭배의 제사장소인 파파묘의 제사문화 또한 독특한 가치를 자랑한다.

2002년의 고고학 발굴에서 고대 예서체로 된 죽간, 목간 3만 6천여매가 발견되어 내외를 놀라게 했다. 당시 사회의 정치와 경제, 문화 제분야에 언급되는 이런 죽간은 기원전 200여년때의 진(秦)나라 때 관아 보관서류이다.

(사진설명: 리야고진의 건물)

이런 죽간에는 글자가 없는 무자(無字)죽간도 있고 백과전서식의 실지 기록도 있다. 리야의 죽간은 진시황 병마용(兵馬俑)에 이어 진나라의 어제를 보여주는 놀라운 발견이다.

진나라가 15년이라는 짧은 동안만 존속했기 때문에 문헌자료가 아주 부족하고 남아 있는 유적도 많지 않다. 그 때문에 리야는 진나라를 보여주는 더욱더 귀중한 동네로 인정된다.

(사진설명: 리야고진의 거리)

리야에서 출토된 건축자재와 도자기, 청동으로 된 병기, 생활퇴적물로 보면 리야는 전국시기 초(楚)나라가 쌓은 군사보루임을 알수 있다. 높이 2m, 하단 너비 24m의 성이 지금도 남아 있고 성밖으로는 6m너비, 3m 깊이의 해자가 있다.

호남(湖南, Hunan)성 상서(湘西, Xiangxi)에 위치한 리야는 교통이 편리하다.길수(吉首, Jishou) 버스 터미널에서 리야행 버스를 이용하거나 용산(龍山, Longshan) 버스 터미널에서 리야행 버스를 타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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