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5 08:51:10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1] 베이징: 천 년의 고도

(사진설명: 모던하면서 예스러운 베이징)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첫 번째는 현대 중국의 수도이자 천 년의 고도인 베이징(北京, 북경)이다. 세계적으로 베이징처럼 눈부신 문화와 중후한 과거를 가진 도시도 없다.

베이징을 보이는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웅장한 황궁 건물과 대면적의 황실 정원, 수많은 사원과 골목 등이 8백 년간 이어온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베이징의 황실 기개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징은 또 마음으로 보아야 보이는 도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3천 년의 도시사와 8백 년의 도읍사가 남긴 문화의 운치는 마음으로 체험해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옛 성 유적지)

중화인민공화국 수도인 베이징은 화북(華北) 평원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3000년 이상의 도시사와 850여년의 도읍사를 보유한다. 선진(先秦)시기에 베이징은 계(薊)라고 불렀으며 춘추(春秋)시기에 이르러 연(燕)나라의 도읍이 되었고 요(遼)나라는 베이징을 배도(陪都)로 정했다.

1153년 금(金)나라는 베이징을 국도로 정하고 중도(中都)라 불렀다. 1215년 몽골의 기병이 금의 중도를 공격해 다수의 건물이 전란으로 무너졌다. 1260년 쿠빌라이는 금나라 중도 옛 성의 동북쪽에 성을 신축하고 원대도(元大都)라 칭했다. 그리고 1272년 쿠빌라이는 원나라의 국도를 이 곳으로 옮겼다. 이로부터 베이징은 중국의 유명한 고도(古都)들이었던 장안(長安)과 낙양(洛陽), 개봉(開封) 등을 대체해 오늘날까지 중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유구한 역사는 많은 문화재를 남기고 웅장한 전각과 넓은 황실정원들에는 찬란했던 황실의 과거가 기록되어 있으며 수많은 골목과 사원들에는 눈부시면서도 중후한 과거가 담겨 있다.

(사진설명: 웅장한 고궁)

황실 궁전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베이징의 고궁(故宮)을 머리에 떠올린다. 일명 자금성(紫禁城)이라 불리는 고궁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고대 궁전 건축물의 군락이다. 명(明)나라 때인 1406년에 축조를 시작해 14년만인 1620년에 완공한 자금성에는 명나라와 청(淸)나라 두 왕조의 24명 황제가 머물렀다.

고궁은 남북 방향으로 뻗은 중심선을 축으로 중심선에 메인 건물이, 다른 건물은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다. 자금성을 바라보면 높고 낮은 건물들이 즐비한데 선명한 붉은 담장과 햇빛에 눈부신 노란 기와, 화려한 그림과 정교한 조각이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힌다.

자금성의 사면에는 10m 높이의 성벽과 52m 너비의 해자가 둘러서 있다. 지난 6백여 년 동안 이 거대한 황성(皇城)에서 키 높은 담과 겹겹으로 막아선 문, 두터운 창이 황실과 서민간의 연결을 막았고 황궁 깊숙한 곳의 비밀도 감추었다. 오늘날 자금성의 전각들 사이를 걸으면 황궁의 웅장함과 장엄함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게 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이화원)

웅장한 자금성 외에 산 좋고 물 맑은 삼산오원(三山五圓)은 베이징에 다채로운 색채를 가미한다. 삼산오원은 베이징 서쪽에 집결해 있는 황실의 정원들을 말한다. 청나라 초반에 조성을 시작한 이런 황실 정원들은 자금성과 비견하는 웅장함도 갖추고 자금성에서는 볼 수 없는 수려한 산수도 거느린다.

그 중 이화원(頤和圓, 이허위안)은 세계적으로 조경이 가장 풍부하고 축조물이 가장 집중되며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황실 정원으로 인정된다. 이화원에는 많은 전각이 웅장하고 산수가 빼어나며 특히 저 멀리 서산(西山)과 옥천산(玉泉山)을 배경으로 하여 교묘한 구도와 정교한 건축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중국의 정원예술을 집대성한 이화원은 ‘황실 정원의 박물관’이라 불리며 또 “세 개의 수려한 호수가 산 하나를 둘러싸고 수백 년 동안 으뜸을 자랑한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천단공원)

명나라와 청나라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祭天)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조(祭祖)는 황실의 대사였고 따라서 베이징에는 다섯 제단과 여덟 사당을 말하는 오단팔묘(五壇八廟)가 있다.

오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天壇)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지단(地壇), 태양에 제사를 지내는 일단(日壇), 달에 제사를 지내는 월단(月壇), 그리고 신농을 비롯해 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농단(神農壇)을 말한다. 그리고 팔묘는 제왕묘(帝王廟)와 태묘(太廟), 당자(堂子), 선인묘(宣仁廟), 소현묘(昭顯廟), 응화묘(凝和廟), 수황전(壽皇殿), 화덕진군묘(火德眞君廟)를 가리킨다.

국도(國都)로서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오단팔묘 중 천단이 가장 유명하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 제천의식을 치렀던 장소인 천단에서는 기년전(祈年殿)과 황궁우(皇穹宇), 회음벽(回音壁)이 명물이다.


(사진설명: 웅장한 기년전)

천단의 메인 건물인 기년전은 3층으로 된 높은 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푸른 하늘,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푸른 기와가 눈부신 빛을 뿌리며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들은 이 곳에서 제천의식을 가지고 풍작을 기원했다.

황궁우는 제사에 사용하는 신주를 공양하는 장소이다. 황궁우를 둘러싼 원형의 담장 표면이 고르고 매끄러워 담장을 마주하고 낮은 소리로 말해도 담장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곳은 회음벽이라 불리기도 한다.

황궁우의 단 아래에는 세 개의 돌이 차례로 깔려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돌 위에 올라서 손뼉을 한 번 치면 세 번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돌을 삼음석(三音石)이라 부른다. 천단 곳곳에서는 이렇게 고대인들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사진설명: 아늑한 십삼릉)

베이징의 북쪽 성문인 덕승문(德勝門)을 나서서 북쪽으로 40km 가면 천수산(天壽山) 자락의 울창한 숲 속에 붉은 담과 노란 기와, 하얀 다리가 어우러진 아늑한 명소가 나타난다.

이 곳이 바로 명나라가 남경(南京)으로부터 베이징에 천도한 후의 13명 황제가 묻힌 십삼릉(十三陵)이다. 여러 황제의 무덤은 명나라의 제3대 황제인 명성조(明成祖)가 묻힌 장릉(長陵)을 중심으로 천수산 자락에 한 일(一)자로 줄지어 있다.

명나라의 도합 16명 황제 중 베이징의 명십삼릉에 묻히지 않은 황제는 3명이다. 그 중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은 사후 남경의 명효릉(明孝陵)에 묻히고 명나라 제2대 황제인 혜제(惠帝)는 명성조에게 황위를 빼앗긴 후 종적이 묘연하여 무덤이 없으며 제7대 황제인 주기옥(朱祁玉)은 영종(英宗)제에 의해 폐위당하고 황릉에 묻힐 대신 제왕(諸王) 릉에 묻혔다.

(사진설명: 베이징의 골목)

현재 십삼릉의 여러 무덤 중 장릉과 정릉(定陵)은 관광지로 개발되고 소릉(昭陵)과 헌릉(獻陵)도 전면 복원되어 눈부신 빛을 뿌리지만 어떻게 보면 고목이 울창한 속에서 황량하면서도 중후하던 황릉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석양이 몇 번 져도 청산은 여전하다. 사람들이 지상에 무덤을 만들고 지하에는 역사가 묻혀 있는 곳, 바로 명십삼릉이다.

베이징에서 후퉁(胡同)이라고 부르는 골목을 보지 않으면 베이징을 잘 알 수 없다. 베이징 고유의 후퉁은 오늘날 과거 베이징의 문화적 부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원(元)나라 때 축성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베이징의 후퉁은 명칭에도 사연이 깃들어 있다. 문승상(文丞相) 후퉁처럼 유명인물로 명명된 후퉁이 있는가 하면 마선(麻線) 후퉁처럼 물건으로 명명하기도 하며 팔도만(八道灣) 후퉁처럼 골목의 모양에 따라 명명한 후통도 있다.

(사진설명: 베이징의 사합원)

과거 베이징에는 7,000여 갈래의 후통이 도시 곳곳에 뻗어 있어 “이름 있는 후통이 360갈래, 이름 없는 후퉁은 소 털 같이 많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베이징이 현대화 도시로 발전하면서 적지 않은 후퉁들이 사라져 문자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베이징의 후퉁에서는 또 사합원(四合院)을 보지 않을 수 없다. 후퉁의 양쪽에는 수많은 사합원이 산재해 고요함과 짙은 생활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합원이란 사면에 담장이 둘러서고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남향의 안채와 다른 세 방향으로 앉은 곁채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원에는 꽃나무를 심고 물고기도 키워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휴식의 한 때를 보내기 좋다. 정원수에 대해서 베이징인들은 금기사항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바로 문 앞에 회화나무와 뽕나무를 심지 않는데 그것은 회화나무에는 벌레가 많이 끼고 뽕나무의 중국어 명칭인 상(桑)이 초상을 지낸다는 의미의 상(喪)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베이징의 장성)

베이징의 사합원은 보통 두 개의 단독 정원과 그 정원 주변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혹 세 개나 네 개의 정원을 거느린 경우도 있다. 베이징이 세계적인 대도시로 발전하면서 모던한 도시가 예스러운 도시의 모습을 대체하고 있다.

베이징 출신의 한 작가는 오랫동안 타향살이를 하다가 베이징에 돌아온 후 이렇게 썼다. “똑 같은 모던한 까페, 똑 같은 고층빌딩들, 고향의 거리에 서니 여기가 베이징인지, 동경인지, 뉴욕인지 헷갈린다.”

오늘날 베이징의 거리와 골목을 거닐면서 오가는 행인들과 하늘을 찌르는 빌딩을 보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성이 아니라 세계 어느 모던한 현대도시에 들어선 듯 하다. 그나마 과거 베이징의 황성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웅장한 자금성과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사합원, 좁은 골목이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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