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09:15:41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4] 남경: 여섯 왕조의 도읍지

(사진설명: 아름다운 남경)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네 번째는 여섯 왕조의 도읍지 남경(南京)이다. 그만큼 예스럽고 소박하며 중후한 남경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며 대범한 풍격도 보유한다.

유구한 역사의 이 옛 금릉(金陵)성에서는 여섯 왕조의 흥망성쇠를 생각하고 옛 사람들의 풍류와 진회하(秦淮河)의 요염함, 막수호(莫愁湖)의 눈물도 느껴 볼 수 있다.

고대에 금릉이라 불린 남경은 중국 7대 고도 중 하나이다. 229년에 동오(東吳)를 세운 손권(孫權)이 이 곳에 도읍을 두면서부터 남경은 선후로 동진(東晉)과 송(宋), 제(齊), 양(梁), 진(陳) 등 왕조의 도읍이 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종산)

천백 년 동안 쉬지 않고 흐르는 장강은 장강문명을 형성한 동시에 남경이라는 이 아름다운 남쪽 나라의 도시도 형성했다. 지리적 환경으로 보면 남경은 산과 물과 도시와 숲이 하나가 된, 역사적으로 ‘용과 호랑이가 자리를 잡은’ 풍수의 땅이었다.

남경은 종산(鐘山)과 서하산(栖霞山), 우수산(牛首山), 청량산(淸凉山), 현무호(玄武湖), 막수호, 진회하 등 산과 물에 둘러싸여 있다. 그 중 종산은 남경성에 예스러움과 소박함, 중후함을 가미한다. 번잡한 현대도시와 이웃한 이 산에는 많은 문인묵객들의 작품이 남아 있다.

남경의 동쪽에 위치한 해발 448m의 종산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부귀산(富貴山)과 구화산(九華山), 북극각(北極閣), 고루강(鼓樓岡), 오대산(五臺山)을 거쳐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발이 도시를 감싼다.

(사진설명: 명효릉의 일각)

장강 기슭에 우뚝 솟은 석두산(石頭山)에는 손권이 석두성을 축조해 장강을 수비하는 요새로 삼았다. 전한데 의하면 제갈량(諸葛亮)이 적벽(赤壁)의 전쟁에 앞서 이 곳에서 손권과 만나 “종산이 용이오, 석두성이 호랑이라 참으로 제왕이 머물 자리로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명나라 황제의 무덤인 명효릉(明孝陵)은 종산의 남쪽 기슭, 모산(茅山)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과 마(馬) 황후의 합장묘인 명효릉은 심히 웅장하다.

명나라 황실 무덤 중 으뜸을 자랑하는 명효릉은 명나라 초반의 건축과 석각예술의 최고 성과를 보여주며 그 뒤 500여년 동안 명나라와 청(淸)나라 제왕릉의 구조에 영향을 주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중산릉)

600여 년의 세월 속에 오늘날 명효릉의 많은 목조 건물들은 사라졌지만 능침의 구조는 여전히 웅장함을 자랑하고 지하 궁전도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능원의 메인 건물과 석각, 방성(方城), 명루(明樓), 보성(寶城), 보정(寶頂) 등도 모두 명나라 때의 것으로 기존의 모양과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중국 혁명의 선구자 손문(孫文) 선생이 묻힌 중산릉(中山陵)은 남쪽을 바라고 앉아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손문선생의 이념을 보여주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네 글자가 중산릉 앞의 편액에 새겨져 마치 위대한 거인이 높은 종산의 정상에 서서 고도 남경을 내려다 보는 듯 하다.

중산릉 동쪽으로 1km 가면 고목이 울창하고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영곡(靈谷)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공원에는 영향사(靈響寺)와 만공지(萬工池), 무량전(無梁殿), 송풍각(松風閣), 영곡탑, 보공탑(寶公塔), 영곡사 등 많은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사진설명: 정교한 무량전)

양나라 때 신축한 영곡사에는 유명한 승려가 묻혀 있고 주원장이 명효릉 축조를 위해 옮긴 장산사(蔣山寺)와 지공탑(志公塔)도 이곳에 있다. 무량전은 최초에 무량수불(無量壽佛)을 공양했다고 해서 원래 무량불을 공양한 전각이라는 의미의 무량전(無量殿)이라 불렸다.

명나라 초반에 신축한 이 전각은 건물의 기반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모두 벽돌로 쌓고 나무 한 조각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들보도 없다고 해서 후에 대들보가 없는 전각이라는 의미의 무량전(無梁殿)이라 불린다. 오래 전에 신축되고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며 건축구조가 아주 단단한 것으로 무량전은 중국의 유사 건축물에서 으뜸을 자랑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종산 산자락의 매산동(梅山同)에는 붉은 매화가 만개하고 가을이 되면 영곡사의 곳곳에서 은행나뭇잎이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단장한다. 청명한 날 산 허리의 자하호(紫霞湖) 기슭에 서면 거대한 팔레트를 방불케 하는 오색찬란한 산이 호수에 거꾸로 비껴 황홀경을 연출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연자기)

남경의 동북쪽 장강 기슭에는 막부산(莫府山)과 서하산, 용담산(龍潭山) 등이 줄지어 있다. 막부산의 장강을 향한 쪽은 깎아 지른듯한 절벽인데 절벽의 상단이 강물 쪽으로 툭 튀어져 나와 있다.

장강 기슭에 우뚝 솟아 있는 이 바위는 삼면이 물이어서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듯 하다고 해서 이름이 연자기(燕子矶)이다. 바위의 정상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정자안의 비석에는 청나라 건륭(乾隆)제가 쓴 ‘연자기’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린 후 이 바위에 올라서면 둥근 달이 강물에 비껴 교교하고 밝은 달빛으로 강물은 하얀 비단처럼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연자기의 이 경관은 ‘금릉 48경’에 선정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현무호)

남경의 동쪽에 펼쳐진 호수가 바로 현무호이다. 자금산(紫金山)에서 흘러 내리는 물을 받아 호수가 된 현무호는 호심에 섬을 두고 있으며 남쪽으로 진주하(珍珠河)를 통해 진회하와 연결되고 서쪽으로 금천하(金川河)를 통해 장강에 흘러 든다.

호심의 섬은 언제를 통해 뭍과 연결되고 호수의 서쪽에 쌓은 성이 동쪽으로 자금산과 멀리 마주 보며 호수와 산색과 성곽이 어우러져 미묘한 경관을 형성한다.

탁 트인 자금산과 달리 진회하는 강남 문화의 여성적 기질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남경 제일의 하천인 진회하는 내하(內下)와 외하(外河)로 나뉘는데 남경성을 흐르는 내하는 십 리 진회하에서 가장 번화한 구간이다.

(사진설명: 번화한 진회하의 양안)

진회하 양안은 동오이래 줄곧 가장 번화한 상가이자 시민들의 주거지였고 수(隨)와 당(唐) 왕조 이래 점점 몰락하면서 오히려 수많은 문인묵객들의 발길을 더 많이 끌었다.

그 뒤에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 이르러 십 리 진회하는 최고의 번창을 누려 화사한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강물 위로는 화려하게 단장한 온갖 유람선이 오가며 꿈속과도 같은 몽환의 경지를 펼친다.

진회화와 이웃한 남경의 옛 성벽은 역사의 상징이다. 남경의 성에는 24개의 성문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 성남쪽의 중화문(中華門)과 서북쪽의 읍강문(挹江門), 동북쪽의 현무문, 성동쪽의 중산문(中山門)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남경의 옛 성)

남경의 성은 명나라 초반에 축성을 시작했는데 성의 기초는 화강암으로 쌓고 큰 벽돌로 성을 쌓았다. 성을 쌓은 벽돌에는 모두 벽돌을 생산한 관아의 명칭과 생산일자가 새겨져 있으며 크기도 하나같이 똑 같다.

벽돌을 쌓을 때 석회와 동유(桐油), 찹쌀로 접착제를 만들어 벽돌을 쌓아 축성한 남경의 옛 성은 아주 단단해 수백 년 동안 드팀 없이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남경의 운치는 구불구불 흐르는 진회하에 스며 있고 길게 뻗은 종산과 서하산에 묻혀 있으며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금릉성에 몸을 숨겨 아름다운 자연과 유구한 역사가 어우러진 남경을 만든다.

(사진설명: 남경 장강대교)

남경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역사 문화 명소 외에도 현대의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바로 남경 장강대교이다.

중국 최초로 독자적으로 설계, 건설한 이 대교는 도로와 철도 교량으로 교량의 길이는 1577m 교각 사이의 거리는 160m에 달해 만 톤 급 선박도 통과가 가능하다.

전반 도시계획이 잘 되어 있고 질서가 정연하고 생활의 리듬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남경은 또 주거에 적합한 도시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명고궁(明故宮) 광장은 연을 날리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한중문(漢中門) 광장은 운동하는 시민들로 붐비며 거리에서는 가끔 높은 목소리로 말하고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남경인도 만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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