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09:37:03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7] 안양: 중국의 제일 도읍

(사진설명: 아름다운 안양)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일곱 번째는 중국의 제일 도읍 안양(安陽)이다. 안양은 지혜와 비주얼이 병존하고 전통과 모던함을 공유하는 도시이다. 이 곳에서는 고대 역사문화 유산과 문화 명인의 유적, 민족 영웅 악비(岳飛)의 생가도 볼 수 있고 자연이 인간에게 준 두터운 혜택도 느껴볼 수 있다.

하남(河南)의 북쪽에 위치한 안양은 서쪽으로 웅장한 태항산(太行山) 산발에 의지하고 동쪽으로 일망무제한 화북(華北) 평원과 이어져 있다. 하남북부의 중심도시인 안양은 4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문화의 옛 도시이다.

안양은 중국에서 문자 기록이 있고 확실한 위치가 정해져 있으며 장기적으로 안정된 중국 최초의 고도(古都)로 중국 제일의 고도라 불리는 중화민족의 문화 발상지 중 하나이다.

(사진설명: 안양의 은허 유적지)

약 4천년 전 ‘삼황오제(三皇五帝) ’ 중의 전욱(顓頊)과 제곡(帝嚳) 두 제왕이 안양에 도읍을 두었고 기원전 14세기 상(商) 나라 임금 반경(盤庚)이 도읍을 엄(奄, 오늘날의 산동 곡부)으로부터 은(殷, 오늘날의 안양)으로 천도했다.

그로부터 은상(殷商) 왕조는 이 곳에서 8대의 12명 임금을 거치며 도합 273년동안 존속했고 안양은 상나라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원전 11세기 주무왕(周武王)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상나라의 주(紂) 왕과 결전을 벌여 패전한 주왕이 자결하면서 은나라는 멸망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은허(殷墟) 유적지가 바로 은상 왕조의 후기 도성(都城)이다. 이 곳에서는 많은 갑골문(甲骨文)과 청동기가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은허의 구도를 보면 궁전(宮殿)과 종묘(宗廟) 구역을 중심으로 주변에 다양한 공방(工房)과 주택, 무덤 등이 산재해 있다.

(사진설명: 출토된 갑골문)

원하(洹河) 강의 북쪽 기슭에는 상나라 임금과 왕실 성원의 무덤이 있는 왕릉(王陵)구역이 위치해 있다. 이 곳에는 크고 작은 묘실과 제사갱 등이 산재해 있다.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은 도합 15만 조각에 달하며 글자수는 4,600여자에 달한다. 상나라 사람들은 국가대사든 일상생활이든 모두 거북 껍데기나 뼈에 점괘를 기록하며 점을 보기를 좋아했다.

따라서 갑골문에 기록된 내용은 당시 은상 왕조의 정치와 경제, 문화 여러 상황을 망라한다. 또 상형(象形)과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등 다섯 가지 조자(造字) 형식을 다 갖춘 갑골문은 한자의 형성에 기반을 마련한 중국 최초의 문자이다.

(사진설명: 사모무대방정)

이밖에 안양에서는 만 점에 달하는 청동기와 많은 도자기, 옥기, 석기, 골기 등 수많은 문화재가 출토되었다. 그 중 중국의 최고이자 세계 으뜸의 청동기로 인정되는 사모무대방정(司母戊大方鼎)은 무게가 875kg에 달해 세계적으로 가장 무거운 청동기이다.

안양에서 남쪽으로 15km 거리에 위치한 유리성(羑里城)은 중국에서 문자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감옥이다. 상나라 후반에 주왕이 희창(姬昌), 즉 주문왕(周文王)을 이 곳에 7년이나 감금했다.

희창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큰 지혜와 큰 용기로 연구에 몰두해 복희(伏羲)씨의 팔괘(八卦)에 하늘과 땅, 인간 간의 관계를 융합시켜 64괘로 발전시켜 빛나는 지혜를 담고 서구의 학자들로부터 ‘동양의 신비주의 거작’이라 불리는 <역경(易經)>을 펴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유리성)

갑골문과 청동기, 역경을 대표로 하는 은상문화는 찬란한 중국의 고대 문명을 구현한다. 따라서 은허(殷墟) 상나라 후반 도성 유적지의 발견과 발굴은 “중국의 20세기 100대 중대한 고고학 발견”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며 ‘은허’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기원전 257년부터 한(漢) 나라 때까지 전국(戰國)시기 위(魏) 나라의 정치가이자 수리 전문가인 서문표(西門豹)가 업(邺)을 다스린 이야기와 전국시기의 종횡가(縱橫家) 소진(蘇秦)이 6개 국의 재상으로 임명된 이야기, 전국시기 조(趙)나라 명장 염파(簾頗)가 지혜로 안양을 취한 이야기 등이 모두 이 땅에서 펼쳐졌고 명의(名醫) 편작(扁鵲)이 세상을 떠난 복도(伏道)도 바로 이 곳에 있다.

조위(曹魏)와 후조(後趙), 전연(前燕), 동위(東魏), 북제(北齊)가 선후로 이 곳 업(邺)에 도읍을 두었으며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뒤에는 이 곳에 상주(相州)와 위군(魏郡), 업현(邺縣)을 설치하여 안양은 줄곧 고대 중국의 정치와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지였다.

(사진설명: 악비묘의 일각)

남송(南宋)시기 금(金)나라에 대항한 민족 영웅 악비(岳飛)의 고향이 안양이다. 따라서 명(明)나라 때인 1450년에 안양 탕음성(湯陰城)에 악비묘를 신축했고 오늘날도 악비묘는 사람들이 애국의 명장을 기리는 장소로 남아 있다.

안양시 북관구(北關區)에는 또 원림(袁林)이 있다. 원림은 근대 중국의 중요한 군사 인물이자 북양군벌의 두령이며 한 때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임시 대통령이 되기도 했던 원세개(袁世凱)의 무덤이다.

독일인이 황실 능원에 따라 설계한 원림은 동서양 특징을 두루 갖추고 어제와 오늘을 함께 하면서 독특함을 보여준다. 이 원림에서는 근대 중국의 역사에서 다양한 신분을 가졌던 원세개의 평생을 잘 볼 수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임려산)

이밖에 안양에는 문봉탑(文峰塔)과 이제릉(二帝陵), 영천사(靈泉寺) 석굴, 명복사탑(明福寺塔), 수정사탑(修定寺塔) 등 문화재가 독특한 문화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안양에는 역사 유적지가 많은 외 자연 경치도 아주 아름답다. 그 중 하나가 기복을 이룬 산발 태항산의 영혼인 임려산(林慮山) 풍경 명소이다.

또 외국인들로부터 ‘세계 8대 기적’이라 불리는 홍기거(紅旗渠)도 바로 안양에 위치해 있다. 험악한 바위산에 조성된 3천리 길이의 홍기거는 현지의 촌민들이 배수를 위해 뺀 인공 물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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