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작품
허장군은 처음에 해서, 예서, 전서 등 다양한 글씨체를 연습한 기초위에 중점적으로 초서체 공부에 모를 박았다고 합니다. 초서체는 서법예술을 가장 잘 대표할수 있고 한 사람의 서예수준을 가장 잘 나타낼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음향)
"초서중에 모체 초서는 그 시대에 가장 높은 서법예술입니다. 하나의 이정표라고 할수 있지요. 또 모주석과 공산당에 감정이 깊기 때문에 저는 모체 초서를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모체초서를 연습한다고 해서 고대 대가들의 비첩을 공부하는데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때문에 지금도 회소(怀素), 왕희지(王羲之) 등 대가들의 비첩도 많이 연습합니다."
서예수준을 늘리기 위해, 특히 모체초서를 완벽하게 쓰기 위해 허장군은 많은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 그의 노전우인 호대산 동지는 이렇게 감회깊게 말합니다.
(음향)
"그는 퇴직 이후 모체초서를 연습했습니다. 아시다싶이 모주석의 글씨체는 당대 서법예술의 최고봉입니다. 연습하기 매우 어렵지요. 우리 몇몇 노전우들도 모체초서를 연습하려고 했지만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허용규 장군은 지금까지 견지했습니다. 그는 모주석의 시사 해독과 모택동 서법수기에 관한 책자를 몇십권 수집하여 반복적으로 연구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몇백수의 시를 서예작품으로 옮겼습니다.."
전시회 작품
퇴직한 연세에 서예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그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특히 모체초서를 배우는데 있어서 글씨의 형태는 비슷하게 쓰지만 그 느낌까지 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부분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음향)
"모주석의 시사를 연구하고 공부한 후 서법예술로 승화시키려면 반드시 당시 모주석이 시를 쓸 때의 역사적배경을 잘 알아야 하고 내포된 뜻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이 글씨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 느낌까지 제대로 살릴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중국어를 계통적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중문서법을 연습하고 일부 모주석의 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저는 민족출판사까지 찾아가서 이미 조선어로 번역된 모주석의 시와 글 자료들을 수집해 보면서 이해를 더 깊이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