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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수리공정 전문가 이빙
2010-03-05 10:36:15 cri

이빙(李冰)의 생년월일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사기"와 "한서(漢書)"에는 간단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빙은 중국 고대 저명한 수리공정 전문가로서 "사기"와 "한서"에는 이빙이 촉군(蜀郡) 군수로 부임했을 때 수리공정인 도강언(都江堰)을 건설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춘추 전국시대 사천분지는 오늘처럼 "천부지국"으로 불리지 못했다. 사천 북부 민산에서 발원한 민강은 해마다 범람해 홍수피해를 입혔다. 민강은 심산협곡을 지나 사천 성도분지에 이르러 물결이 급한 큰 강으로 되여 늘 제방을 무너뜨리고 옥토를 불모의 땅으로 만들었다. 강물이 상류로부터 날라 온 흙, 모래는 강 곬을 넓혀 강물이 제방을 넘쳐나게 했다. 게다가 관현 서쪽에 있는 옥루산(玉壘山)이 민강이 동으로의 흐름 세를 막아 여름과 가을 홍수기에는 서부지역에서 민강이 늘 범람해 홍수피해를 조성했지만 동부지역은 늘 가물피해를 입었다.

중국의 수리기술은 상(商)나라와 서주(西周)시대를 거쳐 춘추 전국시대에 와서는 큰 발전을 가져왔다. 이 시기 건설한 주요 수리시설은 관개시설, 운하, 제방이다. 대형 관개시설건설은 춘추 말기로부터 시작되어 전국시대에 발전을 가져왔다.

진혜문왕(秦惠文王)은 기원전 316년에 촉나라를 멸하고 촉군(蜀郡)을 설치하고 그 지역의 개발을 추진했다. 기원전 256년 진소왕(秦昭王) 51년에 이빙을 진나라 촉군 군수로 명하고 그더러 그의 아들 이랑과 함께 도강언 수리시설공정을 책임지게 했다.

도강언은 중국 사천성 도강언시 서쪽, 산과 강물, 평원이 이어지는 요충지에 있다. 도강언은 이빙이 민강의 수해를 다스리려고 백성들을 동원해 건축한 대형 수리시설이다. 관개, 홍수방지, 통항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이 수리시설은 이미 2,250여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옥루산이 민강이 동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있었기에 민강으로 동부지역의 옥토를 관개하려면 반드시 옥루산을 뚫어 민강의 물을 끌어와야 했다. 이빙은 석공들과 토의한끝에 옥루산에 너비 20미터, 길이 80미터에 달하는 인수로를 내고 민강의 물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도강언 수리공정은 땜을 쌓지 않고 물을 끌어들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공정은 천연적인 지세와 물 흐름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물을 끌어 들여 관개하고 홍수 배수, 모래 제거 문제를 해결했다. 도강언이 건설됨으로 하여 천리 옥토벌이 펼쳐지고 "천부지국(天府之國)"이 형성되게 했다. 이 시설로 하여 성도평원의 관개면적이 500여 만무에 달했다. 이 수리시설은 2000여 년 동안 사용되어 왔다.

도강언은 중화민족문화의 그 깊이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진리를 사실로 증명해 주고 있다.

춘추 전국시대에 수리공정 이론 면에서 사람들은 이미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야 한다는데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도강언의 설계와 시공은 고대 중국 사람들의 총명한 지혜를 구현하였다. 이빙은 언제를 구축할 때 산에서 대나무를 찍어 대나무광주리를 엮어 안에 돌을 담아 강 한가운데 층층으로 쌓아올려 언제를 만들게 했다. 그 당시 폭약이 없었기에 이빙은 산에 나무를 쌓아 불을 달아 암석을 달군 다음 찬물을 끼얹어 암석이 자동적으로 부서지게 하였다. 그 시기 사람들은 제방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제방을 쌓은후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제방 안팍에 심었다. 강물에 침적되는 흙, 모래 높이를 알기 위해 이빙은 도강언 내강에 침적된 흙, 모래 높이를 알리는 돌로 된 표적을 세웠으며 수위의 높이를 알기 위해 돌로 조각한 여인상을 세웠다. 갈수기에는 수위가 여인상의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장마기에는 수위가 여인상의 어깨를 넘지 않았다. 만약 수위가 여인상의 어깨를 넘으면 조치를 취해 관개수를 담보하는 동시에 홍수재해를 방지했다. 이에 대한 기재는 중국의 문헌 중에서 가장 일찍 수위를 감측한 기록으로 된다.

1974년 3월 도강언에서 높이가 2.9미터 어깨 너비가 96센치미터인 석상을 출토했는데 석상엔 "고촉군리부군휘빙(故蜀郡李府君諱冰)"이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 석상의 출토는 수위기록에 대한 문헌기재를 실물로 증명했다.

도강언의 구축은 진나라 때의 만리장성보다도 수십 년 더 이르다. 만리장성은 주로 북방민족의 침범을 막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서 지금 이미 원래의 역할을 잃었다. 하지만 도강언은 지금도 밭을 적시고 홍수피해를 방지하며 항운에서도 커다란 역할을 놀고 있다. 도강언은 성도평원이 가물과 홍수피해를 이겨내고 다수확을 거두도록 담보해주고 있다. 지난 2천여 년 동안 도강언은 세계 수리 역사의 이정표로 되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기재되었다.

도강언의 경관은 자못 아름답다. 여기엔 이왕묘(二王廟), 복용관(伏龍觀), 안란소교, 두서대(頭犀臺), 옥루관(玉壘關) 등 경관이 있다.

도강언은 중국, 나아가 세계 수리공정 역사에 있어서 지금도 기념비적인 공정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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