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 3명의 파키스탄인이 본 중국
청취자 여러분, 아주 오래전에 이슬람교의 선지자가 "시야를 넓히려면 중국으로 가라"란 말을 한적 있습니다. 이 말은 파키스탄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파키스탄인들이 중국에서 생활하고 근무하면서 중국의 변화를 몸소 감수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3명의 파키스탄인이 본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 주재 파키스탄대사관 과학기술참사 저미스 아만은 일찍 1980년에 중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18살난 저미르는 베이징에서 1년간 중국어공부를 마친후 상해로 옮겨 학사와 석사학위 취득 공부를 했습니다.
1987년 귀국한후 저미르는 짧은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후 1987년에 중국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꿈에도 못잊던 중국에 다시 돌아와 중국의 거대한 변화를 감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음향1
"제가 갓 중국에 왔을 때는 바로 중국개혁개방의 초기였습니다. 당시 중국사회는 여전히 보수적이였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적 교제가 적었고 외국인과는 잘 상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이해가 아주 적었으며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을 최고의 위치에 놓았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새와 멜가방 그리고 머리스타일은 거의 꼭 같았습니다. 당시는 표배급제를 실시했는데 식량표, 육류표, 기름표를 이용해 물건을 샀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30년전에 제가 중국에 갓 왔을때 사람들은 첫 대면에 인사말로 '식사 하셨습니까?'라고 물었지만 지금은 '안녕하세요!"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배불리 먹는것이 대사였습니다."
성격이 활달한 저미르는 중국의 표준말을 잘 구사할 뿐 아니라 중국 남방지역의 강소(江蘇)와 절강(浙江) 일대의 방언에도 익숙합니다. 이처럼 언어적 천부를 갖춘 저미르는 지난 30년간 중국인들의 습관적 용어에 깊은 흥취를 가지게 되어 중국특색의 문화적 내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음향2
" '한솥의 밥을 먹으며 별다른 요구가 없습니다.' 평균분배라 개인적 욕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늘 '모주석께 보증합니다'라고 말하군 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우습게 생각합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한솥의 밥'이란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릅니다. 당시 중국인들의 대화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실례로 '어디로 가나요?'라고 물으면 '집으로 갑니다.', '출근합니다.'가 기본 대답형이 였지만 지금은 아주 다양합니다. 시장에 갈수도 있고 영화보러 가기도 하고 친구만나러 가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의 여가 문화생활이 많이 다채롭게 변했습니다. 과거의 제한한 선택에서 지금은 무한한 선택으로 변했습니다. "
청취자 여러분, 저미르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계속하여 또다른 파키스탄인을 만나보겠습니다.
1992년 아비다라고 부르는 파키스탄 소녀가 고급중학교를 갓 졸업한후 중국대학 유학을 신청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아비다는 거의 날마다 중국의 새로운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안정하게 발전하는 사회와 꾸준하고 진취적인 중국인들, 외래사물에 대한 중국문화의 강한 포용력으로부터 아비다는 중국에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는 중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음향3
"저에게 가장 큰 흡인력이 있는 것은 중국인들의 개방적인 사유방식과 강한 포용성입니다. 중국인들은 외국인에게 아주 열정적입니다. 외국인들은 중국에서 아주 편리하게 관련수속을 밟을수 있습니다. 중국어는 파키스탄이나 유럽에서 또는 세계의 기타 지방에서 날로 유행되고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있어서 중국은 발전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중국인들의 열정적인 태도와 안정한 사회환경은 우리들이 안전감을 느끼도록 합니다. 중국인들은 사유가 활달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저는 이런 환경을 선호합니다. 지난 20년간 중국은 믿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
아비다에게서 있어서 중국은 이미 쇼핑의 천국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음향4
"베이징은 쇼핑의 천국입니다. 유럽국가에서 근무하는 저의 친구들은 특별히 비행기편으로 베이징을 찾아 물건을 삽니다. 파키스탄의 대부분 상점들은 독립적인 전문매장이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물건을 사려면 상점을 여러개 돌아야 합니다. 그러나 베이징의 쇼핑센터는 그 어떤 상품도 다 살수 있습니다. 아주 편리합니다. 5-6층으로 된 대형 상점에는 갖가지 상품들이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아비다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또다른 파키스탄인을 만나보겠습니다.
2011년 사미야 아시브는 남편을 따라 중국에 와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베이징의 첫 파키스탄식 식당인 모워르인파식당을 꾸렸습니다.
중국에 오기전에 중국 사회발전에 대한 많은 소문을 들은적이 있는 그였지만 정작 중국에 와보니 느낌이 더욱 놀라웠다고 말합니다.음향5
"10년전과 비교하면 오늘의 중국은 천지개벽의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갓 중국에 진출했을 때 외국인이 회사를 설립하려면 반드시 중국인 동업자를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충족한 자금만 있으면 중국에서 장사를 할수 있습니다. 올림픽을 치른후 중국에 더욱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에게 깊은 인상을 준것은 지하철과 공공버스시스템의 개발입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베이징의 그 어느 곳에도 갈수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복지시설도 많이 증가했습니다."
지금까지 "3명의 파키스탄인들이 보는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이상으로 이 시간 [사회생활] 방송을 전부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임봉해, 김금철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