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장춘의 김춘자 청취잡니다.
아버지에 대한 회억
청명을 맞이하면서 장춘시 애청자애독자클럽에서는 각 소조별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경제개발구소조와 녹원구소조에서는 16명 노인들로 조직돼 공공버스를 타고 장춘시교외에 새로 건설된 장춘시 혁명열사기념관을 참관하게 됐습니다. 기념관이 첫 부분은 항일혁명열사관, 두번째는 조국해방열사관, 세번째는 항미원조열사관으로 나누어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주 참답게 해설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메모까지 했습니다.
특히 항미원조 열사관 해설을 들을때 나는 아주 기쁘게도 우리 아버지 이름-김하건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나는 그 당시 너무 감동되어 무엇이라 형용했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우리 아버지이름앞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첫째 나는 이 활동을 조직한 애청자, 애독자클럽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 이름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7살때 1948년에 중국인민해방전쟁에 참가했습니다. 내가 어렸을때 아버지의 이모저모가 약간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나를 아주 귀여워하시며 사랑해 주셨습니다. 내가 어릴 때 그냥 아버지목마를 타고 노래하던 생각이 제일 생생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제일 부르기 좋아하시던 노래 "노들강변"이 기억납니다.
우리 아버지는 키가 1.80미터이고 아주 건강하셨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서도 아주 큰 역할을 발휘하셨습니다. 길림, 장춘, 요심해방전쟁이 끝난 후 관내에 들어가셨습니다. 강서성 남창시 해방전까지 참가하고 그곳에서 새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 한장을 보내왔습니다. 이 사진이야 말로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영원한 사진입니다. 1950년 초에 아버지는 나라의 호소에 따라 항미원조를 나가게 됐습니다. 항미원조에 나간 후 얼마안되어 1950년 8월 10일 조선원산전투에서 희생됐습니다.
아버지가 희생된 후 당과 정부에서는 나를 매우 관심해 주었습니다. 소학교, 중학교, 대학 과정을 순조롭게 마치고 취직하게 됐습니다.
오늘의 이 활동을 통해 더욱 느끼게 된 것은 오늘의 행복한 생활은 많은 선열들의 피로 바꿔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며 특히 후대들에게 애국주의 교육을 잘 진행해야 된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우리 모두 "중국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럼 이상으로 필을 놓으면서 여러분들의 신체 건강을 축원합니다.
장춘시애청자, 애독자클럽녹원구소조
김춘자올림
2013년 4월 3일 저녁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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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뜻밖에 열사명단에 오른 아버지의 이름 석자를 발견하신 김춘자 청취자에게 축하의 인사드립니다. "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요, 영광스러운 열사명단에서 오매에도 그리던 아버지의 이름을, 그것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그 감격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만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럼 축하의 의미에서 이번 순서에 노래 한곡 선물해 드리겠습니다.김춘자 청취자의 아버지가 즐겨 부르셨다던"노들강변"이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요, 대신으로 "능수버들"보내드리구요, 잠시 후 "퀴즈한마당"코너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외에도 장춘의 이만호, 김일룡, 김숙자, 배영애, 이신숙, 최병성, 리종광, 김애락, 윤영학, 마경옥 청취자, 연변의 문태경, 문득성, 김영자, 박철원,황순금,김봉숙 청취자,구태시의 채수길, 리현덕, 김사철 청취자가 3월 또는 4월의 퀴즈의 답안을 보내주셨는데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