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 네, "농민의 노래" 듣고 돌아왔습니다. 이 노래 창작사연, 창작 과정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석화: 네. 다른것은 다 떼어놓고 방금 서두에서 말씀드린것 처럼 농민들이 수천년동안 땅에 의지해 살아왔는데 그 땅이 자신의 땅이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세기적인 소원이거든요.
사회자: 해방초기 자기 땅이 되었습니다.
석화: 그렇습니다. 가사에서도 보시다싶이 "마반산 높은 봉에 아침해 솟고 / 뒤동산 깊은 숲에 뻐꾸기 운다 / 동무야 쟁기 메고 밭갈이 가세 / 에헤야 어서들 밭갈이 가세…"
사회자: 즐거운 기분으로 밭갈이를 떠납니다.
석화: 그렇지요. 그것이 자기 땅이 아니면 그런 흥겹고 그런 기쁨이 나올수 없습니다. 이는 민족사, 그리고 모든 역사가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자기 두손으로 개척한 땅에 모든 운명을 바쳤는데 그것이 자기 땅이 되고 농민이 스스로 자신의 노래를 부를수 있는거지요.
사회자: 당당하게 이 땅의 주인이 되는것이지요.
석화: 그렇습니다. 이 노래는 시인 천청송 선생이 가사를 쓰고 류광준 선생이 곡을 지었습니다. 이 노래 가사를 쓰신 천청송 선생은 1917년 용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37년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는데 이 학교 재학시 이미 문학적인 재능을 꽃폈고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북향"의 편집원으로 일했습니다. "북향"이란 "북쪽의 고향"이란 말입니다. 조선반도에서 이민 와서 새로운 터전을 가꿔간다는 뜻에서 "북쪽의 고향", "북향"이란 말이고 그 정서를 담은 문학지가 "북향"이라는 문학지입니다. 이 간행물은 1932년 용정에서 무어진 조선문학인 동인단체…
사회자: 지금 말하면 작가협회겠지요?
석화: 그렇습니다. "북향회"라는 작가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북향회"의 기관지가 "북향"이었습니다. "북향회"는 광명중학교…윤동주가 다니던 학교지요. 지금 용정에 그대로 용정중학교 이름으로 남아있고 용정중학교 정원에는 광명중학교 옛 교사건물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건물앞에 윤동주의 시. "서시"가 돌에 세겨져 있습니다. 광명중학교 교원 리주복 등이 당시 간도땅이 조선이주민의 제2의 고향으로 된 상황에서 이곳에 문학을 이룩하자는 취지로 용정지역에서 활동하던 안수길, 강경애, 박계주, 박화성, 모윤숙 등 창작상에서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어 당시의 조선문단에도 이름이 쟁쟁하던 시인. 작가들이 참여한 문학단체입니다. 이분들이 1935년에 "북향" 제1호를 간행하고 1936년에 2~4호를 냈습니다. 바로 이 "북향" 문학간행물에 천청송 시인, 바로 이 노래 가사를 쓴 시인이지요. 천청송 시인이 "꿈 아닌 꿈", "실제" 등 시작품을 발표하고 또 그 시기에 발행하던 "만선일보"에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또 그 당시 발행되던 많은 신문, 간행물들에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그중 특히 1942년 김조규가 연길에서 발행한 "재만조선인시집", 그리고 박팔양이 장춘에서 발간한 "만주시인집" 두 시집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 모두 작품을 발표하는데 "드메", "서당", "주막", "설야", "강동", "묘지" 등 작품들이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천청송의 시작품에는 이처럼 이주민 1세대들의 삶의 모습과 희로애락이 진실하게 담겨져 있으며 함경도 사투리에 기초한 간도농민들의 언어가 잘 구사되어 있고 이 고장 세태풍속이 잘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청송은 그 당시에도 굉장한 시인으로 촉망받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작곡하신 류광준 선생은 조선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했습니다. 류광준 선생은 1933년 일본 도꾜국립고등음악원을 중퇴하고 중국 길림성 화전현으로 이주하여 사방전자초등학교, 동명초등학교에서 교원으로 사업하셨습니다. 1945년 말에 조선의용군 제7지대 선전대에 음악교원으로 사업하셨습니다. 류광준 선생은 1947년까지 조선의용군 제7지대 선전대와 연변전원공서문공단…
사회자: 지금의 연변가무단 전신이지요?
석화: 맞습니다. 거기서 줄곧 음악교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때 만든 작품중 인기작품들이 많은데 "무산대중의 봄", "인민은 무장하자" 등 이런 작품들은 그 시대를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작곡한 "무산대중의 봄이 왔네"라는 노래는 "농민의 노래"와 함께 중국 조선족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기쁨과 환락 그리고 들끓는 정서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사회자: 중국조선족음악사의 대표적 성악곡이라고 말할수 있겠네요.
석화: 그렇습니다. "농민의 노래"의 창작자들인 시인 천정송, 작곡가 류광준, 노래만은 남아서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역사와 함께 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회자: 그렇습니다. 이 땅의 역사와 함께 길이길이 전해지고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는 이 노래 – "농민의 노래"를 보내드립니다.
[노래 – 농민의 노래] 3'13"
이상으로 중국음악 프로를 마칩니다.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임봉해였습니다.
다음 이 시간까지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