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윤영학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내몽골초원의 한 애청자를 추모하여
한창송, 송휘선생님 :
안녕하십니까, 올여름은 이상기후로 인해 사업에 생각지 못한 곤난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난8월17일은 내몽골초원 우리말 애청자 고김일권 선생님 타계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따라 그에 대한 감회가 새로워져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개혁개방후 국가급 중앙조선어방송과 중국국제조선어방송이 또 다시 두 나래를 활짝펴고 새모습, 새기상으로 넓은 우주공간에 전파를 날릴때 내몽골초원에서 제일 선참으로 일떠선 애청자가 다름아닌 바로 김일권씨였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필을 들어 자기의 청취소감을 썼고 또 이와함께 내몽골에서 생활하는 우리 겨례들의 어제와 오늘을 자주 전하여 주었습니다. 이는 산재해 있는 우리 애청자들이 내몽골초원을 알아가는데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글에는 늘 짙은 민족애가 다분히 풍겨왔고 언제나 정열이 넘쳐흘러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김일권씨의 고향은 연길입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고1956년 농촌지원 지식청년으로 초원건설을 지원하여 내몽골로 갔다고 합니다. 그는 갖은 애로를 박차고 부지런히 학습하고 열정적으로 사업하면서 중국농업과학원 내몽골훅호트초원연구소에서 정년 퇴직했습니다.
김일권씨는 퇴직후 완전히 우리말방송애청자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는 우리말방송국과 밀접한 연계가 있었을뿐아니라 연변, 장춘애청자들과도 밀접한 소통을 갖고 전화와 서신 내왕을 빈번하게 해왔습니다. 어느 한 편지에서 그는 초등학교시절 항일 노간부 최채 동지의 따님과 한반에서 공부했는데 최채동지의 전기를 쓴 책을 읽고 싶은데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최채동지전기를 실은 책이 출판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장춘애청자클럽 고문이신 변철호 선생께서 소중히 보관했던 책과 함께 고무격려의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갈망하던 책을 받아쥔 그는 인차 감사인사와 함께 내몽골 조선족 지성인들의 힘을 모아 자체로 편집출판한 <<내몽골 조선족>>과 <<조선성씨 족보전서>>란 두책을 변선생께 보내왔습니다. 그의 고향친구 애청자 김옥산 여사의 말에 의하면 김일권씨는 이 두가지 책을 편집 출판하는데 부편집직책을 맡고 동분 서주하면서 많은 공력을 들였습니다.
변철호선생은 이 책과 편지를 받자마자 즉시 <<전파를 타고 맺어진 인연>>이란 기사를 <<길림신문>>에 발표해 내몽골과 길림성,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조선족인들간의 상호 이해와 우의를 돈독히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알건대는 우리 애청자들의 전파를 통해서 내몽골과 길림성 두 지역의 조선족인사들이 두터운 우정을 맺기는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후부터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편지와 전화로 종종 애청자 활동상황도 문의하고 방송청취소감도 나누었는데 내몽골은 조선족이 적은데다가 방송신호가 좋지 못하여 애청자들을 단합하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연변과 장춘을 따라배워 애청자조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있게 다짐 하였습니다.
장춘의 로애청자 최병성씨는 중국조선족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족이 적은 내몽골초원에서 노심초사하는 그의 고매한 정신에 깊이 감동되여 방송을 통해 그가 즐기는 노래를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 조선족의 항일혁명전통을 소중히 여겼으며 항상 나서자란 고향 연변을 몹씨 그리워 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이런 심정을 헤아려 조선족으로서 중국공산당에 제일 먼저 가입한 화가 한락연 동지의 전기를 담은 책과 새로 출판된 <<연변가요집>>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2006년 9월 우리 조선어방송애청자들로 무어진 태항산견학단일행이 태항산에 도착하여 항일렬사 진광화와 윤세주묘소앞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할때 김일권씨는 우리 일행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기는 특수정황으로 유감스럽게도 이번 견학단에 참여못하였는데 신문과 방송보도를 잘써서 자기에게도 한부보내달라는 부탁도 하였습니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때 그는 이미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그 상황을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후부터 전파를 타고 울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이전처럼 자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문의도 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초원과학연구인원이니 아마도 본직업무에 열중하느라 다망히 보내는 거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국경절 전야에 룡정의 김옥산 애청자가 저에게 김일권씨가 8월17일 타계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비보에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졌습니다. 편지나 전화라도 했더라면 그가 병환으로 앓고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그가 그렇게 애청하던 라지오곁을 영원히 떠나게 될때 위안의 전화 한통이라도 했을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을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라고 질책하였습니다.
그가 하늘나라로 떠난지도 어언간 2년이 지났습니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생존해 계셨더라면 우리말방송을 위해 좋은일을 많고 많이 했으련만 저는 이 2년동안 해놓은 일 없는것으로하여 고인이 된 그에게도 미안할 따름입니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생존해계신다면 오늘 중국국제우리말방송애청자들이 국경 없이 김연준씨를 비롯한 한국의 애청자들, 문진용 애청자가 이끄는 조선애청자구락부성원들, 우리 모두가 중국국제방송조선어부 한집안 식솔이 되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부지런히 전파를 날리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할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됩니다.
그전날 내몽골초원의 애청자 김일권씨여 , 당신은 오늘도 저 하늘 나라에서 맑은 창공에 울려 퍼지는 중국국제조선어방송을 기꺼이 경청하며 자기 한생의 피땀어린 내몽골초원에도 중국국제조선어방송애청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날은 꼭 오려니 마음놓으시라.
저도 당신을 따라배워 당신처럼 우리말방송을 소중히 여기고 청취하며 자기여생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방송사업을 위해 좋은일을 많이할 것을 굳게 다지며 두손모아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구태시신립촌에서 윤영학
2013, 8, 20
감동적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우선 고김일권 청취자의 명복을 빕니다.윤영학 청취자의 말씀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 나라 좋은 곳에서 우리 방송을 듣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간 방송을 듣고 계시는 김일권 청취자 유가족 분들도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파로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속 깊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청취자 가족분들이 항상 함께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김일권씨가 생전에 즐겨들으신 노래를 미리 알아놓았더라면 이 시간에 들려주시면 좋았을 텐데요, 참 유감입니다. 그래서 더더마가 부른 "초원"이란 노래 대신 보내드립니다.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