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관중은 1950년에 귀국했습니다. 귀국후, 그는 선후로 중국 최고 미술학부인 중앙미술대학과 최고 명문인 청화대학 건축학과, 베이징예술대학 및 중앙공예미술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통해 오관중은 서방 현대 예술의 정수를 받아들였고,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는 중국 전통 회화의 "사의" 정신을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그는 중,서 문화예술의 자양분을 섭취하면서 중,서 예술의 장점을 융합시키기 위한 탐구실천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세기 70년대 말, 오관중은 창작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과감하게 유화와 수묵화의 소재 한계를 초월해 중국의 전통 수묵화와도 구별되고 동시에 서방의 현대 예술과도 다른 점을 보여주는 일련의 신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오관중 화백의 그림은 기존의 어떤 틀에서 벗어나 열정을 담아냅니다. 서양인들에게 오관중의 작품에서는 중국 전통문화의 정취가 느껴지고, 반대로 중국인들에게 오관중의 작품에서는 서양 현대 예술의 영감이 돋보입니다. 오관중의 전혀 새로운 심미취향과 독특한 표현기교, 작품속에 숨겨진 기이한 묘미는 그의 작품을 일약 눈부신 명주로 부각시켰습니다.
1991년, 프랑스 문화부는 오관중에게 "프랑스 문예 최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1992, 대영박물관은 오관중을 위해 그의 개인전 <오관중-20세기 중국 화가>를 기획했습니다, 이는 대영박물관이 처음으로 생존 중국 화가의 전시전을 개최한 것입니다. 2000년, 오관중은 프랑스학사원 예술아카데미 통신원사에 추대되였는데 이는 중국예술가로서는 처음이고 동시에 프랑스학사원 성립 근 200년래 아시안인 최초로 이같은 영예를 받게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