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화백은 몸매가 왜소하고 생활도 소박한 편입니다. 그래서 일찍 우산을 수리하는 노인네로 오해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는 90세의 고령까지도 정열적인 창작 능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오관중 화백은 늘 가난만 두려워 하지 않으면 헌신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성품이 유지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생전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런 성품은 첫째, 가난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활에 대한 요구를 낮출 수 만 있다면 최대한 생활에 대한 요구를 낮춰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감정을 예술에 투자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헌신적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관중 화백의 그림은 국제 예술시장에서 거래 가격이 매우 높습니다. 또 생존 화가의 최고가도 끊임없이 갱신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관중 회백은 항상 "나의 작품은 가정의 유산"이 아니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최상의 작품을 여러 국립 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알려진데 의하면 오화백은 타계 몇 시간 전까지도 작품 기증에 관여 했다고 합니다. 별세 당일 낮, 그의 아들 오가우(吳可雨)는 오화백을 대신해 홍콩예술관에 다섯점의 작품을 기증했는데 그중 4점은 올해 갓 창작한 신작이였습니다. 현재 홍콩예술관은 "독립 기개---오관중 기증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주최측은 7월4일 마감일을 이미 오는 8월29일까지 연장했습니다. 오관중 화백이 타계 당일 기증한 다섯점의 작품도 8월 부터는 전시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