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기는 화하문명의 아름다운 예술결정체로서 일찍 신석기시대 선민들이 칠기사용을 시작했다. 전국시기 각지에서 생산된 칠기는 농후한 지역문화특색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초(楚)나라에서 제조한 칠기는 모양과 무늬가 독특하고 색채가 조화로우며 뚜렷한 초(楚)지의 문화특징을 띠고 있다.
칠기공예의 진정한 흥성시기는 명조때이다. 명성조(明成祖)가 서울을 베이징에로 옮긴후 어용 수공업공장을 설치했으며 각지에서 저명 공예가들을 모집하여 궁중 칠기를 전문 제작하게 했다. 어용 수공업공장에서 일하는 공예가들은 선인들의 기술을 기초로 수많은 새로운 공예기술을 창조했다. 명조 가정(嘉靖)년간, 양주의 한 주씨네 칠기공예는 옥, 마노, 진주, 죽목, 금은을 주재료로 하고 재료의 천연모양과 색상에 근거해 각종 무늬를 조각한 후 칠기표면에 새겨 넣어 입체감과 진실감을 보태주어 한 시기의 칠기공예를 대표하기도 했다.
후세에 전해진 칠기는 오늘날 민족문화의 낙인이 찍힌 예술품으로 불리워 수장품 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